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이 지난 2월 17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군축회의 특별 세션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일시 개방하기로 했다가 다시 봉쇄로 입장을 선회한 배경에는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 분열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부를 중심으로 결집한 강경파는 이란이 협상에 응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으며,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우라늄 농축 포기 등 미국이 제시한 종전 조건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란 강경파는 종전 협상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이 해협 개방을 발표한 이튿날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상선에 발포하고, 해협을 닫은 행위는 “이란 내부에 분열이 생겼다는 것을 드러낸 행위”라고 분석했다.
WSJ 보도에 따르면 자신을 ‘IRGC 해군’이라고 밝힌 한 인물은 걸프 해역에 있던 상선들에 무전으로 “해협이 여전히 닫혀있으며 통과하려면 우리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어떤 멍청이의 트윗(SNS 게시물)이 아니라 우리 지도자인 ‘이맘 하메네이’(모즈타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명령에 따라서만 문을 열 것”이라며 해협 개방을 발표한 아라그치 장관을 정면으로 비난했다.
아라그치 장관이 전날 엑스에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하자 이란 강경파는 즉각 반발했다. 모르테자 마흐무디 의원은 엑스에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이 아니었다면 아라그치 장관의 트윗을 문제 삼아 그를 반드시 탄핵했을 것”이라며 그의 성급한 발표가 국제 유가를 내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 ‘전략적 선물’을 안겨줬다고 지적했다.
테헤란 주재 준군사조직 고위 고문들에 따르면 IRGC는 아라그치 장관이 사전 조율 없이 해협 개방을 발표한 것에 대해 극도로 분노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란 지도부를 하나로 묶어오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가 사살되면서 ‘파벌 싸움’이 본격화 한 것으로 분석했다.
강경파는 자국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는 것을 “굴욕”으로 규정하고,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고농축 우라늄 포기 등 종전 조건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사에드 잘릴리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우라늄 농축 포기’ 가능성을 두고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라고 비판하며 협상팀을 겨냥했다. 강경파는 해협 개방과 관련해서도 “해상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같은 내분은 미국과 이란 간 2차 협상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모하메드 아메르시 윌슨센터 글로벌 자문위원은 “서방은 이란 외교부와 협상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지만, 결국 총과 무인기, 고속정을 손에 쥔 쪽이 논쟁의 승자가 되는 것이 이란의 생리”라고 WSJ에 말했다.
미국과 이란은 종전 협상을 위한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CNN방송은 이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양국 협상단이 오는 20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란 측 협상 대표단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19일 “그간 협상에서 일부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최종 합의까지는 아직 거리가 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