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의장이 주도해 6개 원내정당이 합의한 개헌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이번 개헌안 발의에 제1야당이 빠지긴 했지만 개헌의 취지에는 모든 정당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선거 이후에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논의의 초점은 헌법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가를 넘어 시대정신을 반영해 어떤 가치를 담을 것인가로 옮겨가야 한다. 권력구조 개편 등 다양한 정치적 의제가 제기되겠지만, 국가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과제가 있다. 바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명시하는 일이다.
그동안 농업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1차 산업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농업이 창출하는 가치는 농산물의 가격만으로는 환산할 수 없다. 농업과 농촌은 식량안보를 지탱하는 기반일 뿐만 아니라 환경과 경관 보전, 수자원 확보 및 홍수 방지, 전통문화 계승과 지역사회 유지 등 생태적·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왜 이 가치를 헌법에 명시해야 하는가?
첫째, 기후위기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시대에 식량안보는 국가 생존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연이은 지정학적 갈등은 돈이 있어도 식량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 역시 세계 식량 수급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헌법에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명시하는 것은 농업을 보호 대상이 아닌 국가 유지의 필수 기반으로 재정립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둘째, 농업을 향한 국가 지원의 정당성과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농업이 창출하는 공익적 가치는 전 국민이 향유하고 있으나, 유지에 따르는 비용과 희생은 농업인에게 전가돼왔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헌법에 수록된다면, 농업과 농업인을 지원하는 제도가 시혜적 차원이 아닌 국가가 국민을 위해 공공재에 투자하는 정당한 행위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미 해외 선진국들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헌법적 가치로 존중하고 있다. 스위스는 헌법 제104조를 통해 농업이 식량 공급뿐만 아니라 자연경관 보전과 국토의 분산적 거주에 기여해야 함을 명시하고, 국가가 이를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EU) 또한 공동농업정책(CAP)을 통해 농민을 ‘환경관리 주체’로 규정하고, 기본적인 소득지지에 더해 환경·기후 등 공익적 활동을 수행할 경우 추가적인 직불금을 지급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8년 개헌 논의 당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반영하고자 농업계가 주도해 1000만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이제 다시 한번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농업은 국토의 환경을 지키고 국민의 안전한 밥상을 보장하며, 기후·식량 위기로부터 5000만 국민을 지켜내는 국가의 핵심 기반이다. 시대적 과제를 외면한 채 미래를 말할 수는 없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명시하는 것은 단순히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거리와 건강한 국토를 물려주겠다는 국가적 약속이자 미래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개헌 논의에서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충실히 반영해 새롭게 마련될 대한민국 헌법에 생명과 땅의 가치, 그리고 농업의 공익적 역할이 분명히 새겨지기를 기대한다.
정승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