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표준’ 생명과학을 다시 쓰다…인류의 생존·진화 이끈 ‘여성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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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저자는 생명과학 분야 발전을 위해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대상이 생쥐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수컷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여성은 왜 생리를 하고 수유를 하며 남성보다 알츠하이머가 더 잘 발병하고 또 오래 살기도 하는가.

책은 최초로 몸 안에서 살아 있는 새끼를 낳은 포유류 이브부터 처음 이족 보행을 한 이브까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첫 번째 여성, 곧 이브라는 존재를 통해 여성의 몸이 왜 그와 같은 변화를 겪었는지 그리고 이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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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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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 표준’ 생명과학을 다시 쓰다…인류의 생존·진화 이끈 ‘여성의 몸’

입력 2026.04.20 14:42

  • 플랫팀 기자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최초의 이브들

캣 보해넌 지음 | 안은미 옮김

시공사 | 708쪽 | 3만9000원

2012년 뉴욕의 한 영화관에서 저자는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있었다. 스크린에선 등장인물인 엘리자베스 쇼 박사가 임신한 외계 생명체를 낙태하기 위해 수술용 기구를 작동하고 있었고 기계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오류, 이 의료용 팔은 남성 환자에게 맞춰졌습니다.’ 그 장면을 본 저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니, 누가 이런 짓을 해? 수조짜리 탐험대를 우주로 보내면서 여성한테 장비가 작동하도록 설정하는 일을 잊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저자는 생명과학 분야 발전을 위해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대상이 생쥐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수컷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과학 잡지 ‘통증(PAIN)’에 게재된 동물 연구의 79% 이상이 오직 수컷만을 조사했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 같은 관행을 흔히 ‘수컷 표준’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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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의 기간 표준에서 제외된 채 존재해야 했던 여성의 몸은 이로 인해 또 다른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과 남성의 몸은 단순히 생식기관의 차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임상 연구에서 여성의 약물 대사는 약의 유형을 불문하고 남성보다 빠른데, 이는 몸집의 차이 외에 성별에 따른 간세포의 활동 차이에서도 연유한다. 책에 소개된 한 연구는 남성과 여성의 간 생검 결과를 비교해 mRNA 발현이 성별에 따라 유의하게 달라지는 유전자를 1300개 제시했는데, 이 중 75%가 여성에게 발현율이 높았다. 수컷 표준으로 연구돼 정해진 투약 용량 등이 여성에게 정확한 효과를 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사실들 앞에서 저자는 ‘여성의 몸’에 대해 묻는다. 여성은 왜 생리를 하고 수유를 하며 남성보다 알츠하이머가 더 잘 발병하고 또 오래 살기도 하는가. 책은 최초로 몸 안에서 살아 있는 새끼를 낳은 포유류 이브부터 처음 이족 보행을 한 이브까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첫 번째 여성, 곧 이브라는 존재를 통해 여성의 몸이 왜 그와 같은 변화를 겪었는지 그리고 이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해석한다.

‘수컷 표준’ 생명과학을 다시 쓰다…인류의 생존·진화 이끈 ‘여성의 몸’[플랫]

먼저 포유류 젖의 이브 모르가누코돈이다. 트라이아스기 후기부터 쥐라기 중기까지 살았던 초기 포유동물로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운 최초의 동물이었다고 추정된다. 갓 태어난 새끼는 건조, 포식, 기아, 질병이라는 네 가지 중요한 위험과 마주치게 되는데, 모르가누코돈은 이 네 가지 모두와 싸우기 위해 새끼에게 젖을 먹였다. 모르가누코돈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유방의 모양, 초유의 효능 등을 지나 모유 수유 기간 여성의 생리가 멈춘다는 점에서 자연 피임약 역할을 한다는 내용까지 이어진다. 하나의 기원을 시작으로 여성의 몸에 대해 여러 관점으로 훑는 책이다.

이를 통해 여성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여성의 몸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임신한 인간 여성의 뇌가 임신 제3분기가 되면 부피가 5% 정도 줄어들고 출산 후 재건된다는 점은 임신과 출산 이후 여성이 겪게 되는 단기 기억, 감정 조절, 수면 조절 문제가 단순히 감정적 영향이나 피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뇌 자체의 호르몬 조절에 의한 것임을 알려준다.

캣 보해넌은 진화의 가장 앞단에 섰던 여성들의 존재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훑는다.ⓒ Stefano Giovannini, NYC. 저자 홈페이지 캡처

캣 보해넌은 진화의 가장 앞단에 섰던 여성들의 존재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훑는다.ⓒ Stefano Giovannini, NYC. 저자 홈페이지 캡처

‘왜 남편은 아이가 울어도 잘 깨지 않나요?’라는 사소해 보이는 질문에도 답한다. 남성은 노화와 함께 고음역대 청력을 잃지만, 여성의 청력은 더 잘 유지된다.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더 잘 듣는 것과도 연결되는데 “남성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인 남성의 귀는 고음역대를 싹둑 잘라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출산과 모유 수유를 하며 아이를 돌보던 여성이 아기 우는 소리에 더 잘 반응한다면, 아기를 안고 도망치는 등 외부 위험에서 후계자를 구해내는 데 유리하기에 이는 진화적으로도 이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생물학적 근거와 각종 과학 논문에 의거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던 책의 마지막 장이 ‘사랑’이다. 사랑의 이브를 찾으려는 시도는 아니다. 앞서 여러 장에서 과거를 통해 여성의 현재를 살펴봤다면 책은 이제 미래를 이야기한다. 여성이 젖을 먹이고 출산하는 과정이 포유류가 지구를 지배한 방식이고 생존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여성은 “우리 종의 내일을 이끄는 사람”이라며 폭력과 전쟁, 기후위기가 만연한 세상에서 여성의 결단과 변화는 새로운 인류의 진화를 이끌어낼 힘이라고 말한다.

▼ 고희진 기자 goji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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