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김애란 작가. MBC 유튜브 갈무리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좋은 이웃’에는 2020년 전후 아파트값 폭등 때 집을 사지 못해 세입자 신세인 40대 부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신혼 초 ‘우리 시작을 이웃과 함께하자’며 유니세프 정기 후원을 권했던 남편 호준은 요즘은 한강을 건너는 출근길 풍경이 다 돈으로 보인다고 아내 주희에게 말했다. 주희는 ‘그래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쥔 게 있는 세대잖아’라고 답했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재택 독서지도사로 일하는 주희는 방문 학습지교사 시절 인연을 맺은 학생 시우를 여전히 가르치고 있다.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시우는 서울 변두리 낡은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하루는 수업 뒤 옆 동네에 새로 생긴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가게 됐다는 시우 어머니 말을 듣고 주희는 마음이 허전하고 휑해졌다. 이런 감정을 품은 스스로에 수치심을 느낀 주희는 얼마 전 남편이 ‘우리가 잘살게 되면 남을 돕고 살자’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자 곧바로 이런 질문이 머리를 채웠다. “그런데 여보, 우리가 잘살게 되면 우리가 ‘더’ 잘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때도 이웃이 생각날까?”
김애란의 소설에는 주희처럼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망설이다 고통스럽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질문을 하는 등장인물이 종종 나온다. 어떻게 보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는 “전전긍긍과 자문자답”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메시지를 작가는 전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15일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김애란은 인간한테 있고, AI엔 없는 것을 “망설임”이라고 했다. 그는 “누군가의 고민·아픔을 들을 때 어떤 말을 삼키거나 주저하거나 짐작하고 헤아리는 찰나가 있더라”며 “유려하고 빠른 AI의 조언보다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더 위로가 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인간의 결함과 한계처럼 보이는 게 우리의 미덕이고 개성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망설임 없이 이윤을 좇는 빅테크 기업은 AI의 거짓말인 ‘할루시네이션’(환각)을 양산하고 있고, AI가 전쟁의 핵심 도구가 되도록 하는 데도 거리낌없다. AI의 경쟁·속도·효율이 중시될수록,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인간의 미덕인 망설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