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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속물 외교를 끝낼 시간

입력 2026.04.20 20:08

한국은 국제 현안을 단기적 이익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데 매우 익숙하다. 이란전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떠올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전쟁범죄, 인권침해, 국제규범 훼손 같은 가치 문제가 아니라 K방산 특수, 주가 등락, 전후 재건 참여 같은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데 더 관심이 많다. 선진국 자부심이 넘쳐나는 나라에서, 인도주의적 비극을 마주하고도 이토록 이기적, 속물적 계산에 몰두하는 풍경은 기이하다.

이재명 정부의 ‘국익중심 실용외교’ 노선에 글로벌 지향성이 부족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노태우의 ‘북방외교’부터 윤석열의 ‘글로벌 중추국가’까지 역대 정부는 저마다 글로벌 지향성을 추구했지만, 국경을 넘는 가치를 시야에 둔 적은 없다. 그 결과, 한국은 국제규범·인권 문제에 일관되게 무관심을 표출한 유일한 선진국이 됐다.

타국 침공, 외국 지도자 납치·살해, 민간인 대량학살이 반복되는 현실에도 이재명 정부가 미국 눈치 보느라 사실상 침묵하거나 묵인한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미국 추종이라면 한국 못지않은 일본도 가자 지역 위기처럼 필요할 때는 제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4월 어느 날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스라엘의 ‘전시살해’ ‘반인권적, 반국제법적 행동’을 지적하며 이스라엘과 논쟁을 벌였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국제규범 위반을 근거로 한 이스라엘 비판이었다. 놀라운 반전이다.

소셜미디어 발언은 일회성·휘발성의 성격을 띤다. 그 때문에 과연 그의 이스라엘 비판이 진지한 숙고의 결과일까 의구심이 있었다. 이재명은 이를 해소하려는 듯 공식회의 석상에서 잇달아 국제규범·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이런 그의 입장이 안정성·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 정부가 국제규범에 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립했다는 신호는 없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특정 결의안이나 개별 정책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외교부 장관 조현은 국가원수로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관심사를 표명한 것일 뿐 정부 정책을 전환한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읽힌다. 조현이 지난해 “우리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들여다보는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다”고 단언한 사실을 상기하면 그런 해석이 무리는 아니다.

북한과 미국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려던 한국의 열망을 가로막은 이중장벽이었다. 북한 문제는 숙명처럼 한국 외교를 한반도에 묶어놓았고, 그 무게에 눌려 어떤 정부도 한반도의 중력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의 시야는 한반도에 갇혔고, 세계마저 미국이라는 렌즈를 통해 봐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의 시각을 왜곡한 장벽이 모두 사라졌다. 북한은 최근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보는 입장이 얼마나 견고한지 우리에게 일깨웠다. 북한 김여정이 이재명의 대북 무인기 사과에 긍정적 평가를 한 것에 대해 정부가 기대감을 표명하자,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장금철은 “멍청한 바보들의 희망 섞인 해몽”이라고 조롱했다. 그건 남한의 어떤 대화 노력도, 유화적 대북 접근도 소용없다는 경고다.

이런 현실에서 남한이 할 수 있는 것은 적대관계를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평화적 관리를 하는 일이다. 그건 한반도 문제에 투입했던 외교역량을 세계에 투사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북한은 남한을 해방시켰다.

미국도 더 이상 과거의 미국이 아니다. 하나의 문명을 파괴하겠다는 공언은 미국이 국제규범에서 이탈했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약탈적 패권국이 되었다. 미국 동맹국들은 이미 미국 없는 세계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타락한 국가를 무조건 추종하는 유일한 국가로 남을 이유가 없다. 동맹과 보편적 가치 사이 균형을 찾아야 한다.

한국이 군사력·경제력에서는 강대국에 미치지 못하지만, 소프트파워를 가진 중견국으로는 부상할 수 있다. 소프트파워는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며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고 국제규범 형성에 기여할 때 자연스럽게 축적된다. 평화 회복, 인권 보호, 글로벌 의제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이재명이 참석한 호르무즈 해협 자유항행 화상회의가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은 양 날개를 짓누른 오랜 족쇄로부터 풀려났다. 무엇을 두려워하나. 세계를 향해 날아라.

이대근 우석대 석좌교수

이대근 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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