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도 I도 아닌 제3의 유형, ‘이향인’이 온다
‘외향형’ 강요하는 기업문화에서 살아남기
“명명이 주는 해방감”…이상한 게 아녔다
일러스트 | NEWS IMAGE
‘사회생활은 잘할 수 있지만 집단에 정을 주고 싶지는 않은 마음’, 최근 떠오른 개념 ‘이향인’의 특성 중 하나입니다. 직장에서 소속감과 외향성을 강요하는 한국 문화의 피해자들이 환영한다는데요. 어떤 의미이길래 그럴까요? 점선면이 정리했습니다.
E도 I도 아닌 제3의 유형, ‘이향인’이 온다
이향인은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 외향인이나 내향인과는 다른(Other) 사람을 말합니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 라미 카민스키가 제시한 개념인데요. 혼자 있을 때나 큰 모임에서 말고 사람들이 적당히 있는 카페, 친밀한 한두명과의 대화에서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카민스키에 따르면 이향인은 인간관계 형성에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고, 공감 능력이나 친화력도 좋습니다. 그런데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바로 이 ‘비소속감’이 이향인을 설명하는 핵심 단어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역할이 주어지면 곧잘 수행하지만 일대일이나 소수와의 관계를 더 잘 이끌어가는 식입니다. 또 이향인들은 참여자보다는 관찰자의 위치에 있길 선호하는데요. 관행을 따르지 않아서 대중적 유행에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카민스키는 이를 ‘사회 부적응’이 아닌 세상을 조망하며 스스로 풍요를 느끼는 능력으로 정의합니다.
라미 카민스키 <이향인> 중 발췌한 ‘이향인 체크리스트’. 변희슬 기자
‘외향형’ 강요하는 기업문화에서 살아남기
직장에서 이향인은 “냉정하다”, “조직에 어울리지 못한다”, “잘난 체한다” 등의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특히 ‘집단의 일원’으로서 일체감을 직장생활의 덕목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경향이 강한데요.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기업의 선호에 맞게 자기소개서에 ‘원만한 대인관계’, ‘나보다 회사를 먼저 생각하는’, ‘친화력이 뛰어난’ 등을 적어내는 이유입니다.
‘가족 같은 회사’를 강조하면서 사적인 시간과 감정까지 희생하기를 바라는 문화가 이향인을 압박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향인 테스트’에서 이향인으로 분류된 A씨는 경향신문에 “외향적인 성격을 최고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만들어진(강요된) E’들은 누구인지 (이향인 개념이) 설명해주는 것만 같다”고 말했습니다.
카민스키의 책 <이향인> 출판사 21세기북스 한이슬 매니저는 “그동안 ‘내가 이상한 건가’, ‘왜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묘하게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 하며 오랫동안 자책해 온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언어를 얻는 ‘명명의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한다”며 “‘비소속성은 결함이 아니다’라는 책의 메시지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한국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달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기업과 노동자의 소속감에 대한 시각 차로 생기는 갈등은 이향인에게 국한된 고민은 아닙니다. 최근 청년층에서는 직장에서의 소속감을 중시하지 않는 분위기가 두드러지는데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상반기 청년층 대상 채용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소속감을 꼽은 청년은 2.5%에 그쳤습니다. 반면 기업에서는 MZ세대의 애사심이 약해 동기부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불평하고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횡단보도 건너는 시민들. 권도현 기자
“명명이 주는 해방감”…이상한 게 아녔다
일각에서는 이향인 개념에 대한 관심이 최근 MBTI 검사나 무속·사주 유행 등의 연장선에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국인들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도구를 찾는다는 겁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아주대 교수는 “문화심리학자들은 한국인 특성으로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주체성이 강하다고 말한다”며 “영화가 ‘주인공이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것’으로 전개되는 것처럼 자기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크기 때문에 성격 유형에 관해서도 관심이 많은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분류법 자체가 자기 확인 욕구에 부응한 허상이나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회의론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해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제 정체성을 찾은 것 같아 기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김 교수는 “자기 성격 특성으로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좋은 방법을 고민하고, 그로써 자기 자신도 편해지면 좋을 것”이라고 했는데요. 어쩌면 우리 사회 수많은 오해와 갈등을 해소하는 실마리가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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