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물자생산법(DPA) 발동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 거론
중간선거 앞 유가 압박 직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 서명식을 마친 후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석유 생산을 포함한 에너지 분야 프로젝트에 연방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지침을 내렸다. 이란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조치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국방물자생산법(DPA)을 토대로 미국 내 석유 생산과 정제, 석탄 공급망, 천연가스 송전, 전력망 인프라 등을 대상으로 하는 5건의 대통령 각서를 발표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제정된 DPA는 민간 기업에 주요 물품의 생산을 촉진하고 확대할 광범위한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다. 한국전쟁 참전 초기 미군에 군수물자가 제때 보급되지 않자 연방정부의 개입 권한을 확대하는 DPA가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각서에 따라 미 에너지부는 해당 분야에 연방 자금을 투입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에너지부는 업계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지연과 자금 부족, 시장의 장벽 등을 해소하기 위해 에너지 구매, 재정 지원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이때 투입되는 연방 자금은 트럼프 정부가 지난해 통과시킨 대규모 지출 패키지 법안에서 마련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서에서 지난해 1월 선포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거론하면서 “현재의 불충분하고 간헐적인 에너지 공급은 국가 번영과 안보에 점점 커지는 위협이 되고 있으며 미국을 적대국 세력으로부터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며 “회복력을 갖춘 국내 석유 생산 및 정제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미국의 방위 태세에 핵심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번 지침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유가 상승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을 신속하게 끝내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한 상황에서 나왔다. 블룸버그는 유가에 대한 시민의 불안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지난 2월 갤런당 2.9달러대였으나 이란 전쟁 발발 후 40% 넘게 급등해 최근 갤런당 4.1달러대다.
트럼프 대통령은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 장관이 전날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올해 안에 갤런당 3달러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 “완전히 틀렸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어 전쟁이 끝나는 즉시 휘발유 가격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대통령이 주무 각료 발언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게 잘 될 것이라고 강조하려는 것 같다”면서도 “이번 전쟁을 둘러싸고 유가 문제만큼 트럼프 정부의 허술한 메시지 전략을 잘 드러내는 사례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지침에 토대가 된 DPA는 트럼프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남부 연안의 석유 생산 재개 등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는 데 발동한 바 있다. 집권 1기 시절에는 미국의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전 세계 1위에 달한 2020년 3월 당시 인공호흡기 생산을 위해 DPA를 발동했다. 조 바이든 전 행정부 때도 태양광 패널, 변압기, 연료 전지 등의 미국 내 생산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DPA가 발동됐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