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100년 된 그릇이 있다고 해보자. 그 그릇을 어떻게 대하겠는가? 십중팔구 소중히 다룰 것이다. 그러면 500년이 된 그릇은 어떻게 할까? 또 1000년이 넘은 그릇은? 잘 모르긴 해도 할 수만 있다면 방탄유리 속에 진공포장이라도 해서 보관하려 들 것이다.
공자가 강물을 보면서 저렇게 흘러가는 것이 시간이구나 하며 탄식했듯이, 시간은 어김없이 흐른다. 생명은 그 흐름 속에서 시간의 늪에 함몰되어 사라져간다. 기간의 차이가 있을 뿐 예외란 없다. 천년 넘게 살아온 나무가 드물게 존재하지만 그 나무도 결국은 시간의 늪에 빠져 언젠가는 소멸되고 만다.
무생명의 사물도 그러하다. 그래서 시간의 늪을 건너 살아남은 것에 대해 우리는 기꺼이 경탄하며 몹시 아끼고 또 아낀다. 그러면 책은 어떠한가? 특히 고전처럼 때로는 100년을, 또 500년을, 어떨 때는 1000년이나 2000년을 훌쩍 넘기며, 시간의 늪을 건너 살아남은 책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데면데면 대하며 그다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천년 전에 나온 책이 오늘날에도 전해진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보물 다루듯 소중히 대할 것이다. 그런데 책이 소중한 진정한 이유는 책이라는 물건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 때문이다. 게다가 내용 덕분에 고전은 지금까지도 항상 ‘사용 중’이다.
가령 그릇은 100년만 돼도 잘 모셔야 하는 관상용 골동품일 뿐, 실생활에서 아무 때나 사용하는 그릇이 아니게 된다. 반면에 책은 1000년 전, 2000년 전의 것일지라도 그 내용을 언제든 꺼내어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저렇게 변형해 사용하기도 한다. 고전을 두고 ‘살아 움직이는 골동품’이라고 칭하는 이유다. 물건으로서의 책이 고전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고전인 까닭이며, 잘 모셔놓고 상전 모시듯 대하기에 보물인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삶의 필요에 따라 가져다 쓸 수 있기에 보물이다.
덕분에 고전은 미래에도 살아 움직이는 골동품으로 역할하게 된다. 책을 이루는 종이 같은 물질은 시간의 늪 속에서 형해도 없이 사라지지만, 책에 담긴 내용은 오랜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러해왔듯이 시간의 늪을 가뿐하게 가로지를 것이기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