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전쟁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전쟁의 참상이었지만 일상에서 체감된 변화는 의외로 빠르게 나타났다. 바로 유가 상승이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에든버러의 주유소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올랐고, 일부 저가 주유소 앞에는 가격 인상을 우려한 소비자들이 몰리며 긴 차량 행렬이 형성됐다.
현재 유럽이 직면한 에너지 위기는 단순한 가격 상승을 넘어선 구조적 충격이다. 전쟁 발발 후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의 10% 이상이 차단됐고, 유럽 내 원유와 가스 가격은 각 40% 이상 급등했으며, 항공유 가격 상승으로 항공편이 축소되는 등 실물경제에도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에너지기구가 이번 위기를 과거 오일쇼크를 능가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정책 대응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가격상한제는 매력적인 대안처럼 보이지만, 경제학적으로는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면 수요는 유지되거나 증가하는 반면, 공급자는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다른 시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일부 공급업체가 가격 상한을 도입했을 때 소비자가 몰리며 연료 부족 사태가 발생한 사례는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연료세 인하 역시 단기적 완화 효과는 있지만, 정부 재정에 상당한 부담을 초래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 유럽연합(EU)은 보다 점진적인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비축유 방출, 에너지 효율 개선(산업 설비 교체와 건물 리노베이션) 등이 주요 정책 수단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피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국가보조금 규정 완화도 검토되고 있다. 특히 EU는 가격을 직접 통제하기보다는, 물가 상승과 재정 부담을 관리하면서 에너지 소비 구조 자체를 조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유럽 에너지 위기가 더욱 심각한 이유는 이러한 충격이 구조적 의존성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유럽은 에너지 공급 다변화를 추진하며 중동 의존도를 높여왔지만, 이번 사태로 그 대체 경로마저 차단되며 ‘이중 충격’을 받았다. 더 나아가, 휴전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인프라 복구와 물류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상승한 운송비와 보험료는 고비용 구조를 장기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위기는 단순한 가격 급등이 아니라, 유럽 에너지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다. 단기적으로는 비축유 방출이나 세제 조정을 통해 충격을 완화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는 구조적 전환이 불가피하다. 전기차 확대, 에너지 효율 향상, 재생에너지 투자는 더 이상 환경적 선택이 아니라 경제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과제가 됐다.
유럽이 직면한 선택은 분명하다. 가격 억제로 단기적 안정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구조적 전환을 가속화할 것인가. 전자는 정치적으로 매력적일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고, 후자만이 반복되는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소할 수 있다. 이번 에너지 위기는 단순한 충격을 넘어, 유럽 경제의 방향을 재정의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