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간 17만명 해외입양…‘아동 수출’의 후과
해외입양, 아동의 뿌리를 통째로 옮기는 일
정부가 사과·배상해야…진화위 활동 주목
해외에 입양된 한국 아동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모두가 저출생 문제를 말하고 있는 지금이 무색하게, 한국은 전 세계 최대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이 있습니다. 1985년엔 한 해에만 8800명이 넘는 아이를 입양 보내기도 했어요. 그해 태어난 아이 100명 중 1명만큼의 숫자였습니다.
부유한 서구 국가들에게 한국은 아이를 큰 제약 없이 보내주는 나라였습니다. 부모가 거두지 못한 가난한 나라의 아이를 부자 나라에서 맡아 키우는 것. 모두에게 ‘윈윈’인 것 같았지만 후과는 생각보다 큽니다. 그리고 그걸 감당하는 일은 오롯이 입양 당사자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귀여운 한국 꼬마 아이”
보튼마르크의 아들은 노르웨이에 살면서 항상 ‘한국인(The Korean)’으로 불렸습니다. 학교와 사회는 물론, 가족 안에서도 ‘한국인’이라는 호칭이 따라다녔어요. 보튼마르크의 할머니는 입양 증손자를 항상 “귀여운 한국 꼬마 아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들은 노르웨이에서 노르웨이인 가족과 살았지만 그 자신은 언제나 한국의 사람이었습니다. 평생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보튼마르크는 아들의 생모가 16살 때 충동적 성관계를 한 뒤 임신했고, 한국에서는 임신중절을 할 수 없어서 출산했다는 정보를 입양기관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입양은 아들에게도,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그 생각이 너무 순진했다는 것을 압니다. 아이를 뿌리째 옮겨심으면서도 섣불렀습니다. 귀여운 한국 꼬마는 원치 않는 이주 끝에 “침묵을 강요당한 소수자가 되어간 것”이라고 보튼마르크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사고파는 일에 가담”한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해요. 아들이 뿌리를 찾아 나선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58) 크리스티아니아 대학교 부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운현궁에서 그의 책 <너의 한국 엄마에게>를 들고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입양은 산업이었다
한국은 지난 70년간 17만명의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낸 나라입니다. 이 숫자가 20만명이라는 추산도 있어요. 이승만 정권에서 시작된 국제입양은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규모가 커졌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복지부 장관은 한국의 아동을 입양한 미국의 입양부모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습니다. 혼외자, 고아, 성폭행 범죄로 태어난 아동 등은 국가가 책임지면 비용이지만 해외에 입양시키면 ‘달러’가 됐으니까요. 전두환 정권에서는 국가가 국제입양을 권장했습니다. 1985년에는 8837명의 아이를 입양 보냈는데, 그해 태어난 아이의 1.3%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전두환 정권 5년 동안 한 해 출생아 수의 1% 넘는 아동이 ‘수출’됐습니다. 아동 국제입양은 산업이었습니다.
국가가 이 산업을 잘 관리한 것도 아닙니다. 아이를 기르고 돌보는 것은 가정 울타리 안의 일로만 여겼으니까요. 한국은 입양 업무 전반을 민간기관에 맡겨 왔습니다. 정부가 감시·감독하지 않으니 아동의 신원관리가 엉망인 사례가 많습니다. 입양 보내려던 아동이 사망하면 다른 아동이 신원을 넘겨받는 일도 있었고요. 또 한국에서는 2013년까지 ‘비대면 입양’이 가능했습니다. 입양부모가 직접 아이를 만나러 오지 않아도 됐고, 우편으로 신청하는 입양도 할 수 있었습니다.
보튼마르크의 아들은 엄마가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받아온 정보를 보고 “이게 전부냐”고 놀랐습니다. 서류는 사진 몇 장, 몸무게·키가 적힌 문서와 진료보고서 몇 장이 다였습니다. 그마저도 불투명하고 부정확한 정보인 경우가 많다는 것, 결국 입양은 외화벌이 산업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튼마르크와 아들은 ‘뿌리 찾기 항해’ 중 알게 됐어요.
아동 수출을 참회하는 법
영화 <스포트라이트>에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면, 학대하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아이가 학대당하고 불행한 것은 직접 행위자뿐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거죠.
물론 행복한 입양이 많습니다. 아이를 ‘가슴으로 낳아 기르는’ 일은 숭고하고 위대하고요. 하지만 한 아이를 그의 의지와 아무 상관 없이 통째로 이식해 버리고, 나아가 그걸 산업화한 것은 죄업입니다. 스웨덴 정부가 2002년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스웨덴 내 입양인의 자살률은 비입양인보다 3.7배 높았고, 2022년 연구에서도 2배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밖에도 입양인의 자살률, 약물중독 비율, 범죄율이 비입양인에 비해 높게 나타나는 연구가 여럿입니다. 해외 입양된 후 실제로 학대를 당한 사례도 물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뿌리를 옮겨버린 일의 무게입니다.
해외입양인 김유리씨가 지난해 3월26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아동 수출을 조장하고 방관한 한국 정부는 늦게나마 참회해야 합니다. 입양인에게 필요한 지원을 하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보튼마르크와 아들은 생모를 찾는 일이 “소진하는 절차”였다고 했습니다. 입양기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고, 그나마도 시간이 너무 걸렸습니다. 한국을 오가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은 전부 개인의 몫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제라도 할 수 있는 지원을 찾아야 합니다.
사과와 배상도 해야 합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해외 입양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사과를 권고했을 뿐 피해를 배상하라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습니다. 정부가 해외 입양을 2029년까지 완전히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 3기 활동을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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