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에 없이 주민센터를 자주 드나들고 있다. 목적지가 주민센터는 아니다. 새로 지은 주민센터 2~3층에 도서관이 들어섰고, 그곳에 가려면 1층 민원실을 지나야 한다. 오전 시간엔 어르신들이 많다. 민원실 창구의 ‘쌀 신청’ 안내문 앞에서 정부 양곡을 주문하는 어르신들, 서류 한 통을 떼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어르신들. 웬만한 서류는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어 언젠가부터 주민센터는 내게 갈 일이 없는 공간이 됐다. 그런데 그곳에서 간편하다는 온라인이 조금도 간편할 수 없는, 여전히 얼굴을 마주해야 이어갈 수 있는 삶을 만난다.
집과 새 주민센터 사이에 있는 옛 건물은 한창 리모델링 중이다. 공사 안내문에는 ‘행복한 밥상 2호점 설치 공사’라고 적혀 있었다. 서대문구가 결식 우려가 있는 만 6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고, 맞춤형 여가 프로그램까지 곁들인 ‘어르신 복합문화거점’을 표방하는 복지사업이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의아했다. 11년째 살고 있는 북가좌동은 오래된 주택과 빌라가 많아 정겨운 주거지의 결이 살아 있는 동네지만 나는 줄곧 이 동네가 꽤 번듯하고,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순간 ‘이 동네에 무료 급식 사업이 필요한가?’ 하고 되묻게 됐다.
곱씹어 보니 생각이 짧았다. ‘행복한 밥상’이 대상으로 삼은 ‘결식 우려’와 ‘만 65세 이상’이라는 교집합은 단순히 행정적 편의의 기준만은 아닐 것이다. 고령층 경제활동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년을 지난 뒤에는 대체로 소득이 줄어든다. 재산이 있더라도 앞날을 생각하면 지출을 더 조심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주거비나 병원비 부담이 큰 경우, 가장 먼저 줄이게 되는 항목은 결국 식비다.
여기에 자녀의 독립과 분가, 배우자 사별 등이 더해지면 식사는 점점 더 혼자의 일이 되기 쉽다. 한 끼를 챙겨 먹는 일과 하루를 나눌 사람이 함께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취약계층 또는 몇몇 불운한 이들의 사정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노년의 생활 풍경에 가깝다.
식사 빈곤을 다룬 책 <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은 식사의 문제가 이제 단지 굶느냐 마느냐의 차원만은 아니라고 짚는다. 끼니를 거르진 않더라도 먹고 싶은 것을 고르지 못하는 삶, 건강에 좋지 않은 줄 알아도 더 싸고 오래가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는 삶이 있다. 식사는 그렇게 ‘선택권’의 문제가 된다. 한 사람이 무엇을 먹고 누구와 먹는지는 그 사람의 사정과 형편, 관계의 밀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혼자 먹는 식사가 모두 문제인 것은 아니지만, 다른 선택지 없이 반복되는 혼밥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그저 홀로 먹는 한 끼가 아니라, 하루를 오롯이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가좌동이 면한 불광천변에는 군데군데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자리가 있다. 그곳에는 각자 집에서 가지고 나왔을 법한 의자들이 놓여 있는데, 그 언저리에는 ‘의자를 놓지 말라’는 경고장이 붙기도 한다. 함께 머물고 싶은 마음과 공공장소를 관리하려는 질서가 한 장면 안에 맞부딪친다. ‘행복한 밥상’이 무료 급식소가 아니라 어르신 복합문화거점을 표방하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내가 무심히 지나쳤던 필요, 그러니까 덜 혼자일 수 있고 함께 안부를 나눌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요구가 이 동네에서 움트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다.
함께 먹는 자리에는 밥 이상의 것이 오간다. 밤새 안녕했는지, 밥맛은 괜찮은지, 밥상 너머로 오가는 말 한마디는 서로의 존재와 안녕을 확인하게 한다. 그렇게 덜 외롭고 덜 허기진 하루가 쌓일 때 다시 하루를 살아낼 힘이 생기는 법이다.
공사 안내문에 적힌 구청 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언제쯤 문을 여느냐고, 혹시 자원봉사 신청을 받을 거냐고, 3호점 계획도 있느냐고.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공간에 대해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누군가 덜 혼자일 수 있는 자리가 이 동네에 잘 뿌리내리길 바라는 마음이, 오지랖이 넓어서라기보다는 관심과 성원에 더 가까운 마음으로 읽혔으면 좋겠다.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