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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노동자

입력 2026.04.22 20:13

이재명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불안정한 노동에 대해서는 더 많은 보상을 해야 하는데 불안정하면 덜 준다. 이게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정규직이 더 받고 비정규직이 덜 받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사회에 대통령이 신선한 질문을 던졌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려는 강한 의지로도 들린다. 하지만 어떤 질문은 사라졌다. 지금 받는 수준으로 정규직 하고 싶나요, 5% 더 받고 기간제로 일하고 싶나요?

많은 이들이 정년 보장을 원할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도 잘못됐다. 권리는 거래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용안정도, 공정한 임금도 모두 노동자의 권리다. 권리가 거래되기 시작하면 더 이상 권리가 아니게 된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 부당한 처우를 감수하거나, 생계를 위해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걸어야 한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현실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망각당해왔다.

‘기간제’는 그 과정을 잘 보여주는 예다. 기간제는 기간의 정함이 있는, 달리 말하면 해고 시점을 미리 받아놓는 계약이다. 국제노동기구는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라고 한다. 그러나 기간제로 계약해 반복 갱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본은 같은 일을 오래 해 능숙한 노동자를 바랐지만 그만큼의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기간제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며 입법을 추진했다. 그런데 거꾸로 했다. 기간제 사용 사유를 제한하지 않고 기간만 정했다.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간주되는 대신 어떤 일이건 기간제 계약이 가능해졌다. 예외가 상례가 되자 1년11개월짜리 근로계약이 횡행했다. 차별시정 신청 제도도 만들었다. 그러나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차별하지 말라는 노동자들과 계약 갱신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기간을 늘려야 노동자들에게 이롭다는 주장이 시작됐다. 이재명 정부도 기간제 사용 기간 연장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3년11개월짜리 계약으로 권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간제보호법은 기간제를 양산했고 파견법은 간접고용에 날개를 달아줬다. 단체교섭은 부인되고 노동조합은 부정되었다. 노동법의 기준은 자본이 책임을 회피하는 가이드가 되었다. 주 15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에게 퇴직금과 주휴수당 등을 보장해야 한다면 주 14시간50분짜리 계약을 하는 식이다. 노동법이 오히려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상황이 오랜 기간 방치되었다.

노동자가 아니게 되는 노동자들도 늘어났다. 화물노동자는 대표적인 특수고용노동자다. 화물운송계약을 맺는 ‘사장’이다. 그러나 ‘사장’이 결정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오히려 물류사업자가 정해준 일정과 물량을 맞추기 위해 심야노동과 과로에 내몰린다. 그러고도 남는 돈은 별로 없다. 부당한 계약 조건에 항의하면 일감을 잃는다. 이들은 노동법에 기대지 못하고 ‘권리 밖’에 남겨졌다.

20일 화물연대 서광석 조합원이 파업 투쟁 중 목숨을 잃었다. 고용노동부는 “소상공인, 개인사업자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위에 있는 분들”이라며 노동자의 이름마저 지웠다. ‘비정규직’은 고용 형태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기간제, 파견, 하청, 시간제,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등 무엇으로 불리건 권리를 박탈당한 모든 노동자의 이름이다. 국가는 비정규직의 요구를 특수한 이들의 특수한 권리로 취급하면서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를 지워왔다.

이재명 정부는 ‘권리 밖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며 ‘일하는 사람의 권리 기본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새로운 노무 제공 방식’이 등장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역시나 거꾸로다. 노동법 밖에 새로운 노동이 등장한 것이 아니다. 자본이 노동자를 노동법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새로운 종속 방식을 발명해온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본의 본성을 주어진 전제로 용인하며 남겨진 문제를 완화하는 접근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킬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권리 밖’을 획정하는 동시에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모순에 빠져 있다.

“개별적 차원에서 종속된 노동자들이 집단적 차원에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구체적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노동법의 기본 원리이다.”(알랭 쉬피오) 노동법의 기본 원리가 실현되도록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을 작동시키는 것이 먼저다. 노동법을 더욱 튼튼하고 쓰임새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절’ 이름을 되돌려놓았다. 그런데 노동법의 정신은 되살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이상하다.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이상한 나라의 노동자는 혼미하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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