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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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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노동’ 시대의 해일을 함께 헤쳐 나가려면

입력 2026.04.23 20:02

나는 운이 좋았다. 1990년대 초 고등학교 졸업 직전 대학입시를 한번에 끝낸 친구들이 향한 곳은 종로2가, 그렇지 못한 친구들이 향한 곳은 노량진이었다. 당시 종로2가엔 컴퓨터학원이, 노량진엔 재수학원이 많았다. 나는 종로2가 그룹에 속했다. 형편이 되는 집은 이미 컴퓨터를 들였던 시절이지만, 서울 변두리 우리 학교에서 집에 컴퓨터가 있는 애는 한 반에 한두명이나 됐을까.

과거 타자학원이었다는 컴퓨터학원에 가서 4주 속성반에 등록했다. 강사는 자판부터 익히게 했다. 이어 MS-DOS의 기본 개념과 명령어를 가르쳤다. 그래픽 기반 운영체제인 ‘윈도우’가 이미 출시된 터라 MS-DOS에 관한 지식은 쓸모없게 됐지만, 키보드 활용 기술은 평생 써먹을 밑천이 됐다.

2000년대 초 신문사에 입사한 뒤 알게 됐다. 원고지에 기사를 쓰던 시절 입사한 선배들도 나와 엇비슷한 시기 키보드를 익히고 컴퓨터를 배우느라 밤잠까지 줄여야 했다는 사실을. 신문사에 ‘문선’이니 ‘조판’이니 하는, 납활자를 뽑아 문장으로 구성하고 활판으로 조판하는 일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더 나중에 알았다. 그들은 내가 들어오기 전에 ‘컴퓨터조판시스템(CTS)’에 밀려 새로운 직무로 이동하거나 회사를 나갔다.

나는 운이 좋았다. 젊었을 때 ‘인터넷 혁명’이라는 큰 변화가 시작됐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을 만큼 기술을 익힐 기회도 있었다. 그런데 2022년 말 ‘챗GPT’를 접했을 때 머리가 띵했다. ‘아, 이 녀석은 다르구나!’ 내가 하는 일은 그간 기술 변화에 따른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AI)은 다를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내 직업이 제명을 다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처음으로 들었다.

인류가 쉼 없이 경험한 기술의 변화와 발달은 늘 기대와 불안을 동반한다. 신기술로 생산된 제품이나 서비스는 소비자 편익과 복지를 향상시키고, 신기술을 재빨리 익힌 사람에겐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반대로 신기술을 이용할 경제적 능력이 모자란 사람, 신기술을 습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배제되거나 도태될 위험에 놓인다.

위기와 기회가 사람마다, 직종마다 균등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경향신문이 연재 중인 ‘딸깍, 노동’ 시리즈는 AI의 충격에 가장 먼저 노출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동차 공장과 조선소의 하청 노동자, 콜센터 상담원, 번역가, 소프트웨어 개발자, 취업과 재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중년 여성 등이다. 이 기획은 기존에도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AI 전환 과정에서도 먼저 잘리거나 대체될 위험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콜센터 상담원처럼 AI가 도입된 이후 오히려 업무 강도가 늘어난 역설도 확인됐다. ‘콜봇’이나 ‘챗봇’의 성능이 아직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지 않다 보니 사용자들이 더 인간 상담원과 상담하기를 원한다거나, 난도가 높은 어려운 상담이 인간 상담원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AI는 사무직, 전문직, 공공영역 등 안정성을 누리던 직군까지 위협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2021~2022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취업하지 못한 수습 회계사는 한 자릿수였고 2023년엔 114명이었다. 지난해에는 합격자 1200명 가운데 10월 기준 무려 72%가 취업을 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AI 사용이 미미한 수준인데도 과장하거나 미래에 AI가 도입될 것에 대비해 미리 사람을 덜 뽑는 ‘AI 워싱’ 때문이라고 진단하지만, 장차 AI가 불러올 거대한 해일을 피해갈 수 있는 직종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AI 시대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자 사회적 문제다. 노동시장에서 취약계층인 청년, 여성, 저숙련 노동자는 개인의 노력으로 변화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이들에게 생존을 각자의 노력과 운에 맡기라고 요구하는 건 불평등과 양극화의 수렁에 더 깊숙이 밀어넣는 것과 다름없다.

노동시장에 아직 진입하지 않은 계층에 대한 AI 역량 강화와 일자리 정보 제공, 이미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재교육과 직무 전환, 뒤처지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 등 AI 전환에 대비한 정책과 제도의 전면적인 설계에 나설 시점이다. 그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일하는 사람들의 참여다. 노동자들이 기술 변화에 주체적으로 대응하고 참여할 수 있어야 실효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책을 기대할 수 있다.

김재중 사회에디터

김재중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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