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민이 쓴 미국사
네트 블랙호크 지음 | 최재인 옮김
책과함께 | 976쪽 | 5만8000원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역사는 황무지에 정부를 세운 청교도와 서부를 개척한 백인들의 이야기로 채워져왔다. 최근 흑인 노예제가 조명받기 시작했지만 정작 대륙의 원래 주인이었던 선주민의 이야기는 중심에 서지 못했다.
“토착민을 쫓아내고 그들의 땅 위에 세운 나라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선주민이 쓴 미국사>는 역사학자들이 오랜 기간 외면해온 불편한 물음에서 출발해, 선주민의 시선으로 미국의 500년 역사를 다시 그려낸다.
예일대 교수이자 미서부 쇼쇼니 티모악 부족 출신인 저자는 미국사를 ‘발견’이 아닌 ‘만남과 충돌’의 역사로 재구성한다.
15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의 칼날과 질병이 대륙을 휩쓸었지만 선주민은 제국의 팽창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 수동적 희생자가 아니었다. 1680년 푸에블로 반란으로 자치권을 되찾았고, 이로쿼이와 알곤킨은 무역과 외교로 세력 균형을 주도했다. 이 시기 선주민은 북아메리카 질서를 함께 형성한 주체였다.
책은 선주민 노예제라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역사도 짚는다. 흑인 노예제 이전에 100만명 선주민이 노예로 거래됐으며, 1715년 찰스턴 항구에선 인디언 노예가 서아프리카에서 수입한 아프리카 노예보다 많았다.
미국 건국 과정에 대한 재해석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독립혁명의 실질적인 도화선이 선주민 영토로 진출하려던 백인 정착민들의 탐욕과 공포였다고 분석한다. 서부 확장을 둘러싼 정착민과 영국 정부의 충돌, 그리고 선주민에 대한 적대감이 혁명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독립선언문에 등장하는 ‘무자비한 인디언 야만인’이라는 표현은 당시의 정착민들이 선주민을 어떻게 타자화했는지 보여준다.
승자에 의해 지워졌던 존재가 중심에 놓이는 순간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는 다르게 읽힌다. 그 낯선 시선은 오늘날 미국을 이해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