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경제학
벤 추 지음 | 고한석 옮김
메디치미디어 | 408쪽 | 2만5000원
국가 간 높은 무역장벽은 과연 노동자를 보호하는 울타리일까. 아니면 성장을 가로막는 장해물일까. 영국의 경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고립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고립 경제학, 즉 다자간 협력 거부와 자급자족 추구는 부유한 나라를 더 부유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 아래 관세율을 높이고 이민자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미국 산업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수입 부품에 의존하는 미국 제조업체가 타격을 입고, 미국 기업이 세계 무대에 노출되는 기회가 줄어 혁신이 정체되기 때문이다.
세계화에 역행하는 고립주의는 트럼프 정부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도덕적·지적 자족을 미덕으로 여겼고,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무역이 탐욕을 부추긴다며 스스로 식량을 조달하는 도시가 존엄하다는 논리를 폈다.
오늘날의 고립 경제학은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과 불평등에 대한 공포를 앞세워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저자는 식량, 에너지, 반도체 칩 등 여섯 분야로 나눠 세계가 얼마나 촘촘히 연결돼 있는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한 국가가 완벽한 자급자족을 달성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설명하고, 세계화가 실패하면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여준다.
반대로 장벽을 무너뜨리고 힘을 모으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이 되기도 한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전 세계 무역액은 약 8% 줄었지만 의료용품 무역은 16% 증가했다. 백신 개발은 국경을 초월한 과학자들이 협력한 덕이 컸다.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맞서 똑같이 문을 걸어잠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활짝 열어둘 때 길이 보일 것임을 책은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