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직원들이 ‘얼마의 성과급을 받는 것이 적정한가’ 하는 문제가 사회적 논의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평균 연봉 1억원이 넘는 직원들이 수억대의 성과급을 추가로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취업가에선 ‘삼전·하닉 고시’ 열기가 뜨겁다. 대학 입시에서도 반도체 관련 학과 인기가 올라간 것은 물론 두 기업 소재지 인근 부동산 가격 상승까지 예상된다.
개별 기업 차원의 보상 문제를 넘어서 사회 현상으로까지 자리잡은 성과급 논란은 근본적으로 기업의 이익 배분 방식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회사가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을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나눠야 하는가. 회사의 투자를 저해하지 않는 성과급 기준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가. 반도체 투톱이 벌어들인 미증유의 수익이 사회에 던진 질문이다.
특히 향후 10년간 성과급에 관한 노사 합의가 끝난 SK하이닉스와 달리 삼성전자는 노조가 다음달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이다. 노조는 23일 평택 사업장 앞에서 3만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영업이익 15% 지급·성과급 상한 폐지’ 요구를 재확인했다. 수년 전부터 ‘순이익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해 온 현대차 노조도 최근 요구안을 확정하는 등 반도체 외 다른 업계로 확산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23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인근에서 4.23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2026.04.23 평택|문재원 기자
영업이익 15%, 적정한가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 300조원에 노조 요구를 15% 적용하면 성과급 재원은 45조다. 45조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연구개발(R&D) 투자액(37조)와 주주 배당금(11조)을 합친 금액에 육박한다. 또한 삼성이 단행한 역대 최대 인수·합병(M&A) 사례인 하만 인수가(9조4000억)의 4.5배 이상이다. 45조는 시가총액 20위권 기업 규모도 훌쩍 넘어선다. 한 마디로 ‘억 소리 나는’ 액수이다보니 노조 요구대로 인건비로 모두 지출하는 것이 과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노조는 삼성전자의 실적과 동종 업계인 SK하이닉스의 보상 현황을 고려하면 과도한 규모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노조는 지난해 9월 SK하이닉스가 타결한 성과급 합의안을 본따 성과급 체계의 투명화·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송이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부위원장은 통화에서 “지금까지는 재원 출처나 산정식을 알 수 없는 깜깜이 방식이었는데, 하이닉스처럼 투명하게 가야한다”며 “사측이 일회성 포상이 아니라 제도화하면 수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영업이익은 실적 발표 때 수치가 공개되고, 조직 구성원들에게도 공통의 목표를 향한 동기부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성과급 지급 준거다. 하지만 10%, 15% 식으로 일률적인 비율을 설정하는 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SK하이닉스가 이익이 갑자기 많이 나면서 10%를 약속했는데 (성과급) 금액이 너무 커지면 곤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로 이익을 배분하는 건 직원 동기 부여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면서도 “예컨대 100조면 10%, 200조면 7% 식으로 보다 정교하게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조 ‘인재 확보’ vs 회사 ‘미래 투자’의 우선순위 논쟁
성과급 갈등에서 노조와 사측의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한 부분은 인재 보상과 투자 중 무엇을 우선시하느냐의 문제다.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급이 미흡하면 직원들의 ‘SK하이닉스행’이 더욱 만연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도체(DS) 부문의 한 직원은 “지금도 입사하자마자 스터디를 조직해 하이닉스 이직을 준비하는 직원들이 많다”며 핵심 공정 직원들의 이탈을 우려했다.
반면 사측은 반도체 사업 특성상 설비 투자와 R&D 확대를 통해 ‘기술 초격차’를 추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본다. 초호황기를 맞은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이 꺾일 때를 대비해 투자를 지속하는 한편, 또한 AI 고도화에 이어 퀀텀(양자)까지 기술 패러다임 변화를 내다보고 투자 여력을 비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R&D와 설비 투자에 110조를 집행하기로 했다.
결국 인재 확보를 위한 파격적인 보상과 미래 성장 동력을 위한 과감한 투자 사이의 ‘황금비율’을 찾는 게 관건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사례를 참고해, 일시불 현금 성격의 성과급 대신 주식 등 다른 형태와 병행해서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직원 보상이 현재 시점에서의 이익 배분이라면 투자는 미래를 내다본 것”이라며 “경쟁에서 이기려면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당장의 인재에 보상하는 것 못지않게 향후 인재를 유지하기 위한 자금 확보도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SK하이닉스 제공
주주 이익 충돌 우려 해소도 과제
사측은 노조가 성과급 산정 공식으로 제시한 ‘부문별 70%, 사업부별 30%’ 기준이 사업 부문 별 성과급 격차를 키울 수 있고, 메모리 사업부를 제외하면 오히려 성과급 액수를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같은 반도체 담당 DS 부문에서도 메모리를 제외한 파운드리·시스템 LSI 사업부는 아직 적자 상태다. 모바일, 가전을 담당하는 DX 부문의 경우 메모리 가격 폭등으로 세트(완제품) 수익성 악화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이송이 부위원장은 “서로 다른 기준을 통일하고 지급 체계를 투명화한 다음 사업부 별로 차이가 너무 나면 보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막대한 성과급이 삼성전자가 주주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주’로 불리는 삼성전자 주식 보유 국민이 460만여명인데다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도 투입된 상황에서, 성과급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면 주주 환원 규모는 줄어들 수도 있다. 김용진 교수는 “직원 보상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늘리면 주주 이익과의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주주 환원은 지속적인 투자와 투자자 신뢰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노조는 삼성전자 기술력의 핵심이 인재이므로, 인재 유출을 줄이기 위한 성과급 지급은 주주의 장기적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전자가 국민주식이라지만 노사 합의, 지배구조, 주주 환원 등에서 리딩 컴퍼니 역할을 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오히려 주주들이 문제제기를 더 하고, 삼성전자도 노조의 비판을 계기로 더 발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가 17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과반노조 공식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유진 기자
“‘이익 배분’ 위한 섬세한 기준 필요”…삼성 ‘무노조 관성’ 탈피해야 지적도
삼성전자 안팎에선 노조가 다음달 21일~6월7일 예고한 파업 전에 갈등이 수습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크다. 파업으로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파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 입장에선 파업 가능성 자체가 공급에 위험 요인”라며 “리스크가 커지면 (삼성전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주문량이 하락해 회사 경영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는 전략산업으로 나라의 경제안보를 담보하는 핵심 자산의 위상을 지닌다. 기업은 물론 국가 경쟁력에까지 연쇄 충격이 미칠 수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이 대한민국을 이끄는 기업인데 성과급 논란으로 경쟁력이 약해져서 TSMC 등 글로벌 경쟁사보다 더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메모리 세계 1위 기업 삼성전자의 파업 가능성에 대해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우려까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노사가 성과급 지급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확립하고, 회사의 미래 전략과 방향에 대해서까지 노사 간 폭넓은 협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직원과 회사는 물론 주주까지 전체 이해당사자가 공감할 수 있는 합의점에 도달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황용식 교수는 “성과체계도 기업 경영에선 또 하나의 불확실성”이라며 “매해 노사가 협상하는 건 리스크 요인이므로 성과급 체계를 제도화하고 매뉴얼화하는 것이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김용진 교수도 “회사가 미래 전략 방향과 로드맵, 투자와 주주 환원 규모까지 아우르는 장기 계획을 수립해서 노조와 협의를 거쳐 적정선을 찾아야 한다”며 “노조 역시 자기 이익만 챙긴다는 비판을 달가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년 간 무노조 경영을 고수했던 삼성전자에서 노사 간 대화와 합의의 경험이 부족한 것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조를 교섭 상대로 정식 인정한 역사가 짧다보니 사측의 인식과 문화가 우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지용 교수는 “삼성전자는 노조에 대해 건설적으로 대응한 역사가 얼마되지 않다보니 ‘회사가 알아서 다 해 준다’는 식으로 하는데, 그건 잘못된 기업문화”라며 사측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서 교수는 “이번 갈등은 단순히 성과급 때문만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오랜 기간 노조를 등한시해온 데 따른 누적된 불만이 성과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는 목소리와 맞물리면서 파업이 불가피한 상황까지 이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