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8일 문화연대 등 65개 문화예술단체와 794명의 문화예술인이 서명한 성명서가 발표됐다. 이재명 정부의 문화예술 인사정책을 규탄하는 목적으로 21일에는 기자회견도 열렸다. 지난해 임명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부터 최근 황교익 문화관광연구원장까지 6명의 문화예술 분야 기관장 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서명에 참여한 문화예술인들은 그동안의 인사가 공공성과 전문성을 훼손했다고 보며 불투명하고 일방적인 인사 관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대통령의 사과와 인사혁신처 조사, 그리고 문화예술 분야 인사 기준과 원칙을 전면 재정립할 것도 주장했다. 거명된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문화예술 분야의 경력이 거의 없거나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고 보은성 인사가 의심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생각으로 공공기관의 수장이라는 중대한 직책에 지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급된 이들이 국가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기관을 이끌어 갈 만한 경험이나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나 역시 정부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공공기관에서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자문이나 협력을 하면서 엿보게 된 사실들이 적지 않다. 직접 접해 본 정부 출연 연구와 교육 기관의 잘못된 인사가 초래한 파행은 이런 것들이다.
공공성보다 친소가 앞선 순간
기관장들 정치인들과 어울려
밑의 직원들은 자부심 짓밟혀
인사 실패는 곧 정책의 실패
문재인 정부 시절 A기관에는 폴리페서 출신이 기관장으로 임명됐다. 대학교수였지만 연구 업적이나 보직 경험이 별로 없는 인물이었다. 모두가 의아해하는 가운데 기관장에 취임한 그는 원내 업무는 뒷전으로 미루고 외부 정치인들과 어울리는 행보를 계속했다. 정치인들과 맺은 커넥션의 효과를 톡톡히 경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연구원은 평생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였지만 다음 선거에서는 당을 바꾸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윤석열 정부 시기 B기관에는 극우 유튜버 출신 원장이 임명됐다.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몇 차례 일로 방문했을 때마다 직원들이 고생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무능한 직원들이 승진하면서 업무 체계가 흔들리고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자세를 가다듬으려 애쓰는 실무자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한 지자체 산하 C연구기관에서는 보고서도 한번 써본 적 없는 인사가 기관장 자리를 얻었다. 선거과정에서의 공로 때문이라는 말이 돌았다. 평소 연구원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던 기관장은 연구원들의 업무를 일거수일투족을 따져 물었고, 연구원들은 이를 감시로 받아들이며 반발했다. 연구원의 성과는 보고서의 질과 양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기관장의 행태다.
정부 출연기관의 연구원이 되려면, 학부와 석사, 박사 학위가 필요하다. 수년간의 연구 업적도 있어야 한다. 기관에 취직해서도 공공의 이슈를 찾아 해결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공무원들과 협의를 계속한다. 관련 분야 당사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과도 자주 만나고 의견을 들어야 한다. 해마다 여러 편의 보고서를 쓰고 정책 과제를 제안한다.
십수년이 훨씬 넘는 오랜 수련과 그만큼 긴 연구 생활 속에서 연구원들이 버틸 수 있는 요인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공공성의 책임과 전문성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들이 이런 공공성과 전문성을 적절히 발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연구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연구기관의 책임자는 바로 이런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문화연대의 성명서에 지적된 기관의 종사자, 예술가와 연구자, 전문가들이 느꼈을 모멸감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일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굳이 일만 시간의 법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제 우리도 자기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온 이들의 실력과 업적을 존중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국민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있는 것도 그가 지닌 행정가의 경험 덕분이 아닌가?
공공기관의 기관장을 선발하는 데는 관련 분야의 경력과 조직 관리 경험,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공공 정책에 대한 이해를 따져야 할 것이다. 성별과 지역 등 사회적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규정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보은 인사나 사적인 연줄망 같은 요소들이 개입된다면, 그것은 곧 무능하고 부패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잘못된 인사는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