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을 두고 논쟁을 했다. 출마 선언을 한 뒤 권력자처럼 웃고 있는 정청래와 손잡고 찍은 사진을 예로 들며, 한국 정치의 ‘절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말마따나 득의양양한 정청래 옆에서 김부겸은 기뻤을까.
필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김부겸에겐 ‘수모’와 ‘책임감’의 감정이 더 크지 않았을까. 그 수모를 잊지 않고 정치를 바꿔보겠다는 책임 있는 결심, 그것이 고결함과는 거리가 먼 사진 속 김부겸의 손에 쥐여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정치에서 ‘더러운 손(dirty hands)’은 늘 뜨거운 주제다.
도덕적으로 선한 인간이 정치의 길에 나선다고 해보자. 그의 선함은 자기과시가 아닌 진정한 것이라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도덕적으로 나쁜 선택이 정치적으로는 꼭 필요한 수단일 때, 그는 그 선택을 하고 내적으로 괴로워해야 맞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선한 선택이다.
정치가가 그 불편한 선택을 회피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인간적 선을 벗어난 선택은 안 했노라며 과시하고 다닐 수는 있다. 하지만 악이 지배하는 정치 현실을 방관한 책임까지 피할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 막스 베버가 말한 “정치라는 인간 활동이 가진 특별함”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했듯, 정치는 선을 구현하려는 사람이 해야 한다. 악한 인간에게 정치를 권한 사상가는 없다. 딜레마는 그 선함을 정치의 방법으로 실천할 때 발생한다. 그때 그는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수단을 피할 수 없다. 이 사실을 존중하지 않는 정치가는 악의 승리를 도운 “정치적 죄과”를 저지른 사람이 된다는 것, 막스 베버가 말한 책임 윤리론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정치를 버리는 순간 악이 승리해
필자는 유승민이 그런 경우라 본다. 그는 정치에 화만 낸다. 쉽게 타협하지 않는 선한 사람이라 치자. 그러나 그는 정치가다. 남 탓을 할 수 없는 직업을 가졌다. 그의 ‘작위적 비행동(non-action)’은 보수 정치의 세계에서 악이 지배하는 결과와 병행하고 있다. 이게 최선일까.
일상에서 거짓말은 나쁘나, 정치에서 거짓말은 고결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한 이는 플라톤이었다. 사적으로는 착하게 살아야 하지만 정치에서는 착하지 않음조차 배워야 한다고 권고한 이는 마키아벨리였다. 몽테스키외는 정치가가 갖춰야 할 덕성은 종교 윤리나 사회 도덕의 연장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정치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이들이 칭송받는 곳이다.
정치적 선악의 문제를 윤리론적 관점에서만 다루는 것도 잘못이다. 정치에서 선한 사람을 몰아내고 악한 사람이 승자가 되는 가장 효과적인 ‘지배의 전략’이 이 문제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년간 많은 이들이 지금과 같은 정치에 혀를 내둘러왔다. 그들이 주장하듯 부도덕한 인간들이 우리 정치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 못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더럽고 지저분한 정치에 화가 난다고도 말한다. 그들은 진심으로 정치에 역겨워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고결함을 내세우는 것 때문에 바로 그 더러운 정치의 지배 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다. 그들이 견지하는 고결한 반정치론은 더러운 정치에 대한 대안을 없앤다. 선한 정치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심리적 기반을 위축시킨다. 나쁜 권력자와 기회주의자들이 득을 본다.
필자는 정치를 개탄하고 화만 내는 것보다 차라리 “인간의 정치란 그런 것이지” 하는 달관적 태도가 낫다고 본다. 정치에서 악은 일상이다. 비겁한 굴종과 권력에 대한 야심이 없는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부정한 정치사상은 없었다. 그런 나쁜 정치와 다투고 경합하는 것, 그것이 좋은 정치가 감당해야 할 숙명이다. 고결한 반정치론보다 더러운 손이 되는 게 실천적으로는 더 고결할 때가 있다.
필자는 우리 사회가 너무 정치화되어서 문제라는 주장에 반대한다. 그들은 정치의 의미를 반대로 이해한다. 정치화 때문이 아니다. 정치를 망치게 방관해서 문제다.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 부류는 정치를 파괴하는 무례한 팬덤 정치인과 그 지지자들이다. 다른 한 부류는 그들이 혐오스럽다고 정치에 대한 기대 자체를 버리게 만드는 이들이다. 나쁜 정치의 두 공범이다.
남아서 싸우는 이들을 격려해야
정치는 불타는 곳이다. 그 열기를 견딜 수 없으면 떠나라. 하지만 다른 이들까지 정치를 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 떠나지 못하고 남아서 싸우는 이들은 격려받아야 한다. 그들마저 정치를 버리면 최악의 미래가 온다.
자발적 예속으로 권력 욕망을 추구하며 “뉴 이재명”이 된 것에 감사해하는 자들이 판을 친다. 더러운 손이 되어서라도 무엇인가 해보려는 선택, 필자는 그것이 물러서지 않는 ‘선함의 정치’라 보고, 그런 정치를 옹호한다.
박상훈 정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