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 호들갑은 새봄 유통업의 판촉에서, 도시 소비자 사이에서, 매체에서 반짝하다 수그러진 느낌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봄 나물은 새봄에, 한창 봄날의 나물은 한창 봄날에, 또 늦봄과 초여름 앞의 나물은 그때를 지킨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사철 채소가 있다. 사계절 나물거리가 있다. 무는 어떤가. 무는 한반도 곳곳에서 사철 난다. 한국인 누구나 한 해 내내 무를 먹을 수 있다. 5~6월에 씨뿌림 하는 봄무, 7~8월에 씨뿌림 하는 고랭지 여름무, 8~9월에 씨뿌림 해 김장에 맞추어 거두는 가을무, 11~12월에 씨뿌림해 월동하는 제주 겨울무가 오늘날 한반도의 계절과 계절을 잇는다.
“2월에 움 속에 저장한 무를 꺼내 기름진 땅에 심었다가 5~6월이 오면 종자를 받는다(二月, 取窖中所藏之根, 種於肥地, 至五六月收子).”
홍만선(1643년~1715)의 <산림경제> 속 한대목이다. 사계절 채소의 저장과 그 종자를 향한 궁리는 예부터 이렇게 깊었다. 그만 한 궁리를 부친 채소이니 그 이름도 많았다. 한자로는 노복(蘆菔)·노복(蘆萉)·내복(萊菔)·나복(籮蔔)·나복(蘿葍)·청근(菁根) 등으로 썼다. <산림경제>는 무의 기본 어휘를 ‘나복(蘿葍)’으로 잡고, 채복(菜菔)·노복(蘆菔)을 덧붙였다. 그 조선어 어휘는 한글로 ‘무우’로 썼다. 표준어 ‘무’ 말고도 무우·무수·무시 등의 어휘가 오늘날에도 살아 있다.
그 형제자매도 많다. 무 가운데 어린 무는 열무, 뿌리가 작고 무청이 긴 무는 총각무이다. 총각무 가운데 뿌리가 굵고 끝이 뾰족하며 한여름에 거두는 놈은 초롱무(초록무)라고 따로 이르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새봄에도 한여름에도 무를 먹는다. 단무지무는 8월 중순 이후 씨뿌림 하여 서리 내리기 전에 거둔다. 단무지무 없이 단무지 없다. 단무지 없으면 김밥집도 자장면집도 하릴없다.
무는 동치미·무김치·섞박지·깍두기·나박김치·열무김치·총각김치·무짠지·무밥·시래기밥·시래기나물·무시루떡·무부침개·무만두·무구이·무조림·무찜·무정과·무나물·무생채·무장아찌·무말랭이·무엿·무국 등등으로 몸을 바꾸어 한국인의 밥상에 복무한다. 소고기뭇국, 콩나물뭇국, 북어뭇국, 김치뭇국, 고등어무조림이며 온갖 국탕과 찌개와 조림과 찜은 어떤가. 무 없이는 맛도 없다. 유중림(1705~1771)의 <증보산림경제> 속 무 기록도 읽어볼 만하다. 이 책에는 무동치미, 총각김치, 무조림, 무순김치 등 별미 반찬 만드는 법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나복황아저(蘿葍黃芽菹)’, 곧 무순김치 항목을 읽어 보자.
“정월에 움에 저장한 무를 꺼내고, 무순은 싹둑 자르고 무와 파는 총총 채쳐 김치를 담가 먹으면 사람에게 문득 봄기운이 솟게 한다(正月, 取土窖中所藏根, 剪下黃芽並飛削蘿葍根生蔥, 作淡菹食之, 令人頓生春意).”
그야말로 문득 봄기운이 내게 닥친 듯하다. 이미 여름인가 싶어 살짝 풀이 죽었다가, 봄날 무의 풍미를 떠올리니 그래도! 하고 달아오르다 텁텁해진 대기에 반발할 만하다. 저만 한 관능이 나를 깨울 수 있을 것만 같다. 몇 문장 속에서 봄기운이 다시 피어난다. 한반도의 무는 이런 내력을 품고 있다. 그 내력 따라 무를 맛난 먹을거리로 여기고, 정말 맛나게 먹어온 일상생활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저 관능의 표현부터 오늘날 되새길 만하다. 되살려 써먹을 만하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