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함성이 시끄럽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학교는 위축돼 운동회를 개최하지 않으려 한다. 아파트에서는 아이들 공 차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아예 공놀이를 금지한다. 운동회에서는 승패를 가리지 않는 학교가 늘고 있다. 아이가 지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일부 학부모들의 민원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지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는다. 청군의 승리도, 백군의 패배도 지워진 자리에서 패배에 대한 승복, 승자에 대한 축하, 패자에 대한 연대를 배울 기회는 사라졌다.
조용한 사람들이 패배하고 있다. 공무원은 악성 민원이 무서워 몸을 사리고, 교사는 극성 학부모를 피하려 보통 학부모와 접촉하는 일마저 줄이려 한다. 미디어는 이를 증폭시킨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는 큰 목소리에 더 많은 권력을 주고, 소수가 작성한 인터넷 댓글이 여론처럼 보인다. 자극적인 반응이 퍼질수록 조용한 사람들은 더 침묵한다.
정치권은 그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국민의힘은 극우 유튜브의 목소리에 휘둘리고 더불어민주당은 선명한 개혁이 아니면 퇴보라고 주장하는 강성 지지층의 압박에 끌려다닌다. 국회의장 선거에도, 원내대표 선거에도 권리당원 표심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당원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강성 지지층이라는 소수가 전체를 대표하게 되는 모순이 굳어지고 있다.
정연경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3월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국민통합’ 세미나에서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이념이나 정책의 차이가 아니라 정서적 양극화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정당 지지자들의 정책 선호는 남북 문제와 노동 이슈를 빼면 한·미 동맹 강화, 고소득자들에 대한 세금 부과 등 대부분의 사안에서 같은 방향을 향한다. 오히려 차이는 감정에서 발현된다. 판단 기준은 내용이 아니라 ‘상대가 싫어서’다. 정 연구원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강성 지지층이 오히려 민주주의적 협치를 저해하는 양극화의 주된 동력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구도에서 타협할 공간은 없다. 정치인들은 강경한 목소리를 내야만 지지받을 수 있고 중간 지대 목소리는 갈 곳을 잃었다. 구세진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같은 세미나에서 12·3 내란 이후 정치적 자기검열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정치적 견해 차이 때문에 말을 아끼게 되는 경험을 자주 한다는 응답자가 32%를 넘어섰다. 구 교수는 내란 이후 사람들이 말했을 때 돌아올 사회적 반응을 실제보다 더 적대적으로 예측하고 정치적 발언의 비용을 과대평가한다고 분석했다.
뾰족한 처방은 없어보인다. 제도 개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오히려 지금은 가장 크게 들리는 목소리가 가장 많은 사람의 생각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유념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침묵 안에 당신과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유념하는 것 말이다. 정치의 복원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중간지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중간지대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귀를 기울이는 능력이 아닐까. 크게 말하는 사람 쪽이 아니라 말하지 못하는 사람 쪽으로.
임아영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