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재정 모니터(Fiscal Monitor)에서 한국의 중기 재정 전망을 제시하자, 국내 언론은 “한국 국가부채 급증” “비기축통화국 중 위험” 같은 제목을 쏟아냈다. 국제기구의 경고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한국은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고, 연금·의료·돌봄 지출도 앞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 하나만으로 한 나라의 재정 지속 가능성을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우선 국가채무와 국가부채부터 구분해야 한다.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직접 상환해야 하는 국채·차입금 중심의 확정 채무, 즉 D1이다. 반면 국가부채는 발생주의 회계 기준에서 미지급금이나 충당부채까지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이다. IMF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국제 비교에 주로 사용하는 것은 일반정부 기준 부채, 즉 D2에 가깝다. 어떤 기준의 부채비율을 말하는지 구분하지 않으면 재정 위험은 쉽게 과장될 수 있다.
IMF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일반정부 기준 부채비율, 즉 국제 비교에 주로 쓰이는 국가부채비율은 2026년 54.4%에서 2031년 63.1%까지 상승한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부채비율은 여전히 OECD 평균보다 크게 낮다. 2024년 OECD 평균이 109% 안팎인 반면, 한국은 50%대 중반 수준이다. 증가 속도만 강조하고 절대 수준과 상환 능력을 함께 보지 않으면 재정 현실은 쉽게 왜곡된다.
재정 지속 가능성은 부채비율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가채무뿐 아니라 GDP 성장 능력, 국채 이자 부담, 차환 위험, 조세 기반, 대외 신인도, 정치적 의사결정 능력이 함께 작동한다. 같은 60%의 부채비율이라도 성장률이 유지되고 이자 부담이 낮은 나라와, 성장 잠재력이 꺾이고 금리가 급등하는 나라는 전혀 다르다.
비기축통화국끼리 비교해야 한다는 주장도 참고할 수는 있다. 그러나 기축통화 여부가 재정건전성을 가르는 결정적 기준은 아니다. 2022년 영국의 ‘트러스 모먼트’가 이를 보여준다. 당시 리즈 트러스 내각은 대규모 감세와 에너지 지원을 담은 미니 예산을 발표했지만, 재원 조달 방안과 중기 재정계획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 시장은 이를 무책임한 재정 확대 신호로 받아들였고, 파운드화는 급락했으며 장기 국채금리는 급등했다. 연기금의 부채연계투자 운용에서도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다. 결국 영란은행이 장기 국채 매입에 나섰고, 트러스 내각은 출범 49일 만에 붕괴했다. 기축통화국도 시장 신뢰를 잃으면 순식간에 흔들릴 수 있다.
한국 재정의 또 다른 특징은 채무의 성격이다. 국가채무 중에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처럼 대응 자산이 존재하는 금융성 채무가 적지 않다. 단순 총액만 놓고 정부의 실질 부담을 판단하면 순상환 능력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 시장 신뢰까지 고려하면 한국 재정이 당장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최근의 경험은 국가부채비율만을 정책 목표의 최상위에 놓을 때 어떤 왜곡이 생기는지를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는 국가부채비율 관리에 집착한 나머지 경기 둔화 국면에서도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제약했다. 세수 결손이 발생하자 기금을 끌어다 쓰거나 회계 간 조정으로 부족분을 메우는 방식이 반복되었고, 일부 사업에서는 불용과 집행 지연이 양산됐다. 중산층·서민은 힘이 드는데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국가부채비율만 유지하느라 재정의 경기 대응 기능과 자원 배분의 투명성은 오히려 약화됐다.
물론 한국 재정에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고령화, 저출생, 의료·돌봄 지출 증가,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 잠재성장률 하락은 모두 중장기 재정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연금개혁, 지출 구조조정, 조세 기반 확충, 성장 전략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다만 이러한 논의가 “부채비율이 오르니 재정을 무조건 줄여야 한다”는 식으로 흘러가서는 곤란하다. 올해처럼 고유가와 물가 부담으로 서민의 삶이 압박받는 상황에서, 초과세수를 민생의 방파제로 활용하기보다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진짜 질문은 부채비율이 몇 퍼센트냐가 아니다. 그 부채가 무엇을 위해 쓰였는가, 미래 성장률을 높이는 지출인가, 세입 기반을 넓히는 투자였는가가 핵심이다. 한국 재정 논쟁은 더 치열해져야 한다. 다만 출발점은 달라야 한다. GDP 대비 부채비율이라는 하나의 숫자에 갇혀 공포를 키울 것이 아니라, 성장 잠재력, 지출의 질, 제도적 규율, 시장 신뢰를 함께 따져야 한다. 한국 재정은 위기 때 경제를 지탱할 수 있는 정책 자산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