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공동체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존재였다.
그 공동체는 계급적 열망감으로 고통받았던 이들에게 지키고 싶었던 존재였다.
상대방의 기존 신분을 모를 때 새 공동체의 평등이 가능하다.
혁명은 ‘동지’를 모르는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진정한’ 연대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죽은 자와 대화를 위해 현재의 ‘성취’를 부정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부산 출신이지만 한때 ‘광주 작가’로 불릴 만큼 소설가 정찬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을 많이 썼다. 장편 <광야>, 중편 <슬픔의 노래> <완전한 영혼>, 단편 <새> 등이 그것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매우 다양하지만, 2002년 광주 항쟁을 다룬 장편소설 <광야>가 도드라진 까닭이다. 최근 출간된 <그들이 있었던 곳>은 이전의 <광야>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소설이다. 광주 항쟁 발발일인 1980년 5월18일부터 진압일 27일까지의 상황을 세세하게 묘사하여 광주 항쟁의 전모를 파악하기에 좋은 작품이다. 시간대별 주요 사건들을 다채로운 인물의 시선 속에서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독자를 5월 광주의 현장으로 데려간다.
추천사를 쓴 소설가 정지아는 이 작품을 2024년 12월3일 윤석열 정권의 계엄 선포와 연결시킨다. “1980년대는 광주의 핏빛 소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우리는) 광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도 광주 항쟁을 제대로 다룬 작가는 드물다. 한 세대 뒤인 한강 작가가 긴 침묵을 깨뜨렸고, 한국 문학의 숙원이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정찬의 장편소설 <그들이 있었던 곳>은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광주 항쟁의 전모를 섬뜩하게 우리 앞에 들이민다. … 국가는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당연한 진리다. 그럼에도 우리는 2024년 12월3일, 또다시 국가폭력 앞에 노출되었다. 광주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민주화된 시민들 덕분이었다. 그 민주화는 광주의 피로 가능했다. 우리 모두 광주 항쟁의 수혜자인 것이다.”
동지를 몰라야 가능한 혁명
나는 <그들이 있었던 곳>을 ‘혁명의 숙명’으로 읽었다.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다. “김원갑은 왜 대학생이라고 말했을까? 묻는 자의 신분이 대학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광주 공동체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존재였다. 그 무등(無等)의 공동체는 계급적 열등감으로 고통받았던 이들에게 지키고 싶은 세계였다.”(100쪽)
시민군은 서로의 신분을 몰라야 했다. 강상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2018)에서의 ‘김군’처럼 시민군이 복면을 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복면은 단지 신원이 들통나 계엄군에게 잡혀갈지 모른다는 밀대질(제보, 고발을 뜻하는 경찰 은어), 프락치 논란뿐 아니라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하기 위함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대방에 대해 안다는 것, 그것은 차별의 시작이다. 상대방의 기존 신분을 모를 때 새로운 공동체에서의 평등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본디 혁명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출신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복면 상태는 혁명을 지속시키기 위한 변태(變態)였다.
이 작품에서 나를 가격한 또 다른 문장이 있다. “적이 눈앞에 있으면 광주 공동체는 붕괴하지 않는다. 공동체 붕괴의 가장 큰 요인은 분열이다. 신군부가 광주 공동체에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쁨의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무서운 시간이 온다. 참여자와 비참여자, 강경파와 온건파, 학생과 일반인,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분열의 조건은 얼마든지 있다. 인간의 분열 능력은 천부적이다. 혁명군은 혁명을 이루는 순간 분열한다. 기자로 20여년 활동하는 동안 세계의 대표적 분쟁 지역을 취재하면서 내린 결론이었다.”(81쪽)
정찬은 “인간의 분열 능력은 천부적”이라고 했지만, 그것이 작가의 냉소인지 진실을 말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분열이 인간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시민군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가 시민군 혹은 ‘운동가’로 모일 때는 그것이 동일한 정체성이 되지만, 이 일체감은 일시적이다. 혁명과 코뮌의 기쁨은 잠시다. 그 순간에는 차이를 잊지만 곧바로 ‘우리는’ 여러 가지 차이에 직면한다. 계급, 나이, 젠더, 직업, 학력, 지역… 당시 광주 시민군의 구성은 ‘일반 시민’ ‘부랑아’ ‘농민’ ‘재건 대원(넝마주이)’ ‘유흥업소 종사자’ ‘노가다’ ‘룸펜’ ‘성직자’ ‘대학생’ ‘실업자’ ‘(폭력)조직에 몸담은 이들’ ‘지식인’ 등 다양했다.
그들은 달랐지만 계엄군의 만행 앞에서 ‘인간적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항쟁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같았을지 몰라도, 이후 투쟁 계획과 계엄군과의 대치 상황 속에서의 판단은 같을 수 없었다. 아니, 같을 리 없었다. 결국 시민군이 해체된 후 ‘그들’은 이전의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지식인과 언론 그리고 국가는 광주에 대한 담론을 전유(專有, 轉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혁명은 언제나 실패와 슬픔의 연속인 것이다. 소비에트의 붕괴, 중국 혁명과 그 혁명을 부수었던 문화 혁명은, 혁명 과정 즉 ‘적’과의 싸움에서 흘린 피보다 ‘동지’와의 다툼에서 더 많은 피를 흘릴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소비에트 혁명 이후 그리고 문화 혁명에서 각각 2000만명이 희생되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600만명. ‘좋은’ 사회에 대한 인간의 의지가 나치의 학살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우리는 흔히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구조란 무엇일까? 마치 건축물의 골조처럼 사회에도 그런 것이 있을까. 그게 법이나 제도일까? 그러나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불행한 현실은 그대로인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의 혁명은 왜 언제나 좌절되는가. 아니, 혁명은 꼭 추구되어야 하는 것일까. 혁명(革命·revolution)은 본디 ‘껍질(革)’, 통치자(命)를 바꾸는 것뿐이다. 결국 ‘같은’ 볼트가 돌고 도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개혁(改革·reformation)은 피부를 벗기는 것, 몸의 형태를 바꾸는 일이다. 혁명보다 일상의 개혁이 더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당시 시민군들은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고 ‘계급 변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일상에 트라우마만 자리 잡았다.
영화 <김군>은 전직 육군 대령 지만원씨의 선동, 즉 전두환씨조차 부정했던 북한군 남파설, “광주 사태는 북한 병사 600명이 남한에 내려와 시민을 학살한 것”이라는 극우 세력의 주장을 반박하는 듯 보이지만, 나는 시민군이었던 ‘김군’의 실존을 묻는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1980년 5월23일 이후 ‘김군’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사망했거나 속세를 떠났다고 추정할 뿐이다. ‘김군’은 하나 된 시민군이라는 이름 아래 묻힌, 수많은 이질적인 ‘민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그 이질성이 시민군의 진실, 실체였을 것이다.
20여년 전 나는 5·18 관련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당시 한 재일교포 남성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때 가두에서 선전 활동을 한 여성을 태우고 돌아다녔던 운전기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자이니치’라는 타자로서 그가 동일시했던 광주의 주인공은 운전기사였다.
죽은 자와의 연대를 위하여
<그들이 있었던 곳>에 대한 박구용 전남대 교수의 추천사도 흥미롭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진 5월 광주, 인간은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정찬의 <그들이 있었던 곳>은 이 근원적 물음에 대한 숭고한 철학적 응답입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곁에 함께 머물렀던 ‘그들’의 자취를 통해 인간 존엄의 숭고함과 연대의 철학을 눈부시게 증명합니다.”
광주는 연대의 실천이었고, 이 소설은 “연대의 철학”이었을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잠깐의 조우, 절합(節合·articulation)이라면 몰라도, 살아 있는 사람끼리의 연대(連帶·solidarity)는 불가능하다. 연대는 잠시의 어깨동무가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즉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같은 처지가 될 수 있겠는가. 무등은 꿈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연대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역사의 영혼”이 아닐까. 죽은 자와 대화를 위해서는 현재의 ‘성취’를 부정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죽은 자는 너무 할 말이 많고, 산 자는 언어가 부족하다.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말을 걸고 5·18의 현재성을 사유하는 일,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외치는 기억 투쟁, “잊지 말자”일 것이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