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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혐 없는 힙합’ 탐구한 랩 마왕…제리케이가 남긴 질문은

입력 2026.04.29 07:00

수정 2026.04.2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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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비판 ‘독설가’ 래퍼 제리케이

투병 끝 세상 떠난 그가 남긴 질문

‘차별·혐오 없는 힙합’의 가능성

래퍼 제리케이. 경향신문 자료사진

래퍼 제리케이. 경향신문 자료사진

키비, 화나, 더콰이엇, 매드클라운….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활동한 힙합 크루 ‘소울컴퍼니’는 멤버들의 면면부터 화려합니다. 한 명 한 명이 한국 힙합 씬을 주름잡는 굵직한 뮤지션들이죠. 그리고 그 중심에 래퍼 제리케이(Jerry. K, 본명 김진일)가 있었습니다. 힙합을 좋아하는 독자님이라면 모르기 어려운 이름일 거예요.

안타깝게도 악성 뇌종양 투병 끝에 지난 27일 향년 42세로 세상을 떠난 제리케이. 오늘 점선면이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한국 힙합에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던져 왔기 때문이에요. 그는 힙합 씬에 널리 퍼진 소수자·약자 혐오를 거부하고, 평등과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했습니다.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거리낌 없이 내기도 했고요. 오늘 점선면은 그가 남긴 질문을 되돌아봅니다.

부조리 비판 거침없던 ‘독설가’

제리케이는 1984년에 태어나 2001년 고교 동창인 래퍼 메익센스와 듀오 ‘로퀜스’를 결성했습니다. 이어 2004년 소울컴퍼니의 컴필레이션 앨범 에서 정식으로 데뷔해요. 소울컴퍼니는 2002년 ‘하자센터(서울시 위탁 청소년학습공간)’에서 유명 래퍼 MC메타가 연 힙합 수업 수강생들이 결성한 크루입니다. 로퀜스도 초창기부터 소울컴퍼니와 함께했고요.

제리케이는 로퀜스와 솔로 활동을 병행하면서 굵직한 곡들을 남겼어요. 2011년 소울컴퍼니와 로퀜스가 해체하면서는 ‘데이즈 얼라이브’라는 레이블을 설립하고 솔로 뮤지션이자 소속사 대표로 활발히 활동을 이어나갑니다. 2020년 5집 앨범 이 마지막 앨범입니다.

제리케이는 초창기부터 사회 참여적이고 현실을 비판하는 가사를 썼어요. 돈과 외제차, 방탕한 생활 등을 주로 다루는 오늘날 한국 힙합과 좀 다른 결이죠. 첫 솔로 앨범 <마왕>의 타이틀곡 ‘마왕’은 “석유는 빼 쓰고 그보다 더 새까매진 물은 폐수로 밤중에 몰래 방출해”나 “자연의 원칙을 다스리는 자본의 법칙을 따라가는 자멸의 몸짓” 같은 가사로 산업사회의 환경 오염을 비판했어요.

굵직한 사회 이슈가 터질 때마다 음악으로 의견을 내기도 했어요. 2014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심경을 담은 ‘Stay Strong’, 2016년 국정농단 사태를 비판한 ‘하야해(HA-YA-HEY)’ 등이 유명합니다. 청년 비정규직 문제를 지적하는 ‘대출러브’,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을 얻고 숨진 황유미씨의 이야기를 담은 무료 공개곡 ‘뛰어 넘든지 기어봐’ 같은 곡들도 냈어요. 음악성도 인정받아 한국대중음악상 랩·힙합 부문 후보에 여러 차례 올랐습니다.

돈은 마치 철조망, 뛰어넘든지, 기어봐
그래도 누군가는 뛰어넘으려
발바닥에 가시가 박혀도 걸으려
덤비는 그 미친 이들에겐 너무 가혹한 이 세상
늘 함께하길 신의 가호가

- ‘뛰어 넘든지 기어봐’ 中

소수자 혐오 없는 힙합의 가능성

제리케이는 공개적으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등 적극적으로 소수자 인권 옹호 목소리를 내 왔어요. 이 또한 여성혐오적 가사를 지적받는 오늘날 힙합과 다른 길이죠. 2018년 래퍼 산이가 곡 ‘페미니스트’를 통해 페미니즘을 비판하자, 제리케이가 ‘NO YOU ARE NOT’이라는 곡으로 반박한 ‘디스전(래퍼들끼리 곡으로 서로를 비난하는 것)’이 유명합니다.

래퍼 제리케이(오른쪽)와 슬릭이 2018년 11월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래퍼 제리케이(오른쪽)와 슬릭이 2018년 11월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은 2018년에 힙합과 여성혐오를 주제로 제리케이를 인터뷰했어요. 제리케이는 이 자리에도 “이런 문제일수록 여성에게 더 많은 발언권이 주어져야 한다”며 여성 래퍼 슬릭을 데려왔습니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은 유교적 도덕관을 설파하는 소위 ‘꼰대’와 차이가 있다”며 “‘정치적 올바름의 덫에 빠져 작품성을 잃었다’는 말은 선진국 반열에 오른 국가의 인권시민으로서 생각할 만한 것들을 ‘하기 싫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어요.

여성혐오적 가사를 지적하면 ‘검열’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제리케이는 “가사에 대한 비판을 받는 것은 검열이 아니라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증거”라고 반박했어요. 슬릭은 “소수자 혐오를 지적하면 촌스럽다고 여기는 분위기는 잘못됐다”며 “힙합의 솔직함이 문화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가치조차 따르지 않는 걸 말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했고요.

넌 한동안 못 감췄던 목소리의 떨림을
감추려 가슴 어딘가의 전원을 껐지
엄마들은 공장에서 기침을 했고
너흰 이유도 없이 자꾸만 침울해져

- ‘콜센터(feat. 우효)’ 中

콘텐츠 시장이 거대해진 오늘날, 제리케이가 남긴 질문은 힙합에만 그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혐오적 표현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가 늘고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변화”라고도 했어요. ‘차별·혐오 없는 힙합’의 가능성을 탐구한 제리케이의 질문에, 독자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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