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숨진 장덕준씨 어머니 박미숙씨가 지난 2월1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집회 중 생각에 잠겨 있다. 성동훈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 창업주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을 쿠팡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했다. 쿠팡이라는 대규모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김 의장의 권한과 책임 간 괴리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동일인 지정은 시작일 뿐 공정위에는 ‘끼워팔기’ 의혹 등 쿠팡의 여러 사건들이 쌓여 있다. 공정위는 미국의 부당한 외교압력에 흔들림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남은 현안도 처리해야 한다.
공정위는 29일 쿠팡 동일인을 쿠팡 법인에서 김 의장으로 변경해 지정했다. 공정위는 그간 김 의장의 친족이 국내 계열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해왔다. 하지만 김 의장 동생인 김유석씨가 부사장급 대우를 받으며 경영 참여를 해온 점이 현장점검에서 확인되면서 이번 결정을 내린 것이다. 동일인이 법인에서 자연인으로 바뀌면 총수 일가는 사익편취 규제 적용을 받는다.
2024년 당시에도 김유석씨의 경영 관여 의혹이 있었지만 쿠팡 측 자료를 근거로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던 공정위가 이번에 동일인 변경을 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공정위는 동일인 지정 외에도 쿠팡의 각종 의혹을 살펴보고 있다. 쿠팡이 유료 멤버십인 ‘와우멤버십’ 이용자에게 쿠팡이츠·쿠팡플레이 등을 끼워팔기한 혐의, 쿠팡이츠가 입점업체에 음식 가격을 경쟁 업체와 같거나 더 낮추도록 강요한 혐의 등이 대표적이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경찰 수사, 산업재해 은폐 및 불법파견 의혹 등에 대한 고용노동부 조사도 진행 중이다.
쿠팡의 여러 의혹들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오면 미국의 외교압력이 더 높아질 수 있다. 다만 이것이 미국 전체 여론은 아니다. 쿠팡 사태에 대한 미국 측 우려를 전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방미 기간 중 만난 상·하원 의원 다수가 쿠팡의 후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압력을 가하려는 미국 정치인들 중 상당수가 사실상 쿠팡의 로비스트인 셈이다. 정부는 쿠팡 문제가 불필요한 통상 마찰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하되 부당한 압력에 물러서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그럴 경우 국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사업은 한국에서 하면서도 상장은 미국에 하는 기업이 늘 수 있다.
정부는 쿠팡과의 법적 분쟁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쿠팡은 이번 동일인 변경 조치를 수용할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예고했다. 쿠팡 미국 투자자들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한국 정부의 과도한 조사와 제재로 손해를 입었다면서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쿠팡의 부당행위들은 증거가 차고 넘치는 만큼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냉정하게 대응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