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훈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안과 지방자치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석이나 설 명절, 고향을 찾은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홀로 강가에 서 있으면 내가 살고 있는 모두의 고향이 나에게는 타향 같았다”. 시인 김용택이 이용악의 시 ‘눈보라의 고향’에 담아둔 감상이다. 떠난 이들에게 고향은 그리움이다. 하지만 잠시 그 허기를 채우고 떠나고 마는 곳. 더 이상 그곳은 삶의 고향이 아니다. 고향에 뿌리 박은 이들은 떠난 그들의 허기를 채워주다 정작 자신이 허기지고 만다. 20세기 한국인 삶의 가장 큰 사건은 이 ‘도시화’가 만들어낸 허기일 것이다. 삶이 땅이 아닌 공간에 터 잡은 도시화 말이다.
고향을 물으면, 우물거리게 된다. ‘서울 외엔 모두 시골’이란 서울내기들에게 자존심 상하면서도, 긴 서울살이에 지방 사람이라 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서울과 지방의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는 ‘1.5세대’가 내 고향 정체성이다.
도시민 2세대지만, 기억의 지층에 시골 또한 간직한다. 폭설이 내린 아침 뒷산에 올라 ‘푸드덕’ 소리에 돌아본 시선 속으로 들어오던 눈 날리는 솔가지의 흔들림을 기억한다. 노란 나락들이 탈곡기에서 탈탈거리며 알맹이를 드러낼 때 온몸을 휘감던 까슬함도 떠오른다. 그래서 지금 고향에 대한 허기는 서울 맞은편에서 왜소해진 ‘지방’으로 향한다.
1950년 도시인구는 410만명으로 한국인 다섯 명 중 한 명(도시화율 21%)에 불과했다. 60년이 흘러 2010년 도시인구는 4060만명(82%), 이제 거꾸로 5명 중 한 명만이 시골에 산다. 사람도 물자도 서울로 떠났다. 그사이 영호남 인구는 반토막 났다. 반면 전체의 7%에 불과하던 서울 사람은 22%로 세 배 이상 불었다. 도농과 서울·지방의 격변은 천지개벽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땅의 삶에서 공간의 삶으로 변화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공동체에 ‘뿌리’를 둔 존재에서 공간을 따라 ‘이동하는 개인’으로 변모했다. 삶들 사이엔 관계보다 기능이 중요하고, 그게 존재가치를 정한다. 전장이 된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올라갈 것인가’가 삶의 질서가 된다. 도시는 산업화·민주화의 용광로였지만, 동시 압축 진행된 근대화 속도에 정체성은 뿌리를 잃는다. ‘성공해도 불안한 도시인’들은 그래서 늘 허기진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지방’을 이야기하는 상황이 낯설면서도 반갑다. 헌법 전문에 균형발전을 새겨넣자 하고, 아예 행정수도를 못 박자는 말도 들린다. 20여년 전 어디에도 없던 관습헌법 논리로 천시받던 균형발전이 지금 이처럼 절실해졌다.
광역행정통합은 그 고민의 결과물이다. 우여곡절 끝에 광주·전남은 이번 선거를 통해 특별시로 합쳐진다. 서울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지닌다. 구한말 대한제국이 ‘조선 8도’에 남북을 더한 뒤 120년 넘게 이어진 체제에 처음 균열이 생겼다. 지방을 서울·수도권에 대항할 만한 ‘5극3특’의 거대 권역으로 재편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전남광주통합시 앞길이 봄날 같지만은 않다. 원칙과 대의의 풍경을 지나면 다가오는 건 세밀화 같은 현실이다. 통합 시청을 어디에 둘지, 공무원 조직은 또 어떻게 합칠지 지나야 할 가시밭길이 한둘이 아니다. 또 다른 쏠림이 나타날 것을 알기에 처절할 수밖에 없다. 특별시는 강해지겠지만, 그 안의 시군들은 더욱 기반을 잃을 것이다. 이 명료한 미래는 지난 세기 도시화에서 한국인들이 체득한 교훈이다. 떠난 이들에게 상품으로 박제된 고향은 여전하고, 지방 소멸의 비극적 얼굴 또한 변함없이 남겨진 이들 몫이 될 것을 예감하게 된다.
서울·수도권만 비대해지는 소멸의 무한증식보단 나을 것이다. 다만 아쉽다. 이왕 바꿔야 한다면, ‘서울화의 아류’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는 없을까. 오랜 허기 끝에 먹은 밥이 설익고 온전히 헛헛함을 채울 수 없는 것이라면 안타깝지 않은가.
문득 지난 200년을 지배해온 ‘근대성’의 지침을 바꾸지 않는 한 ‘허기의 행렬’은 끊어지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함에 다다른다. ‘5극3특’의 또 다른 불균형 전략이 ‘서울뿐인 한국’을 만든 불균형 전략의 대안이 될 수 없듯, 크고 효율적인 세상을 숭배하는 한 ‘우리의 땅’은 너무 좁다. 성장과 개발의 욕망 앞에 고향을 고향답게 만드는 꿈은 무망할 뿐인가.
성장해서 허기가 채워졌는가. 그렇지 않음을 인정하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허기진 삶을 바꿀 근대성의 재구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더 느리게, 더 소박하게 살 수 있을 것인가. 그 목마름과 용기 사이에서 독백 같은 자문은 내내 휘청인다.
김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