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상남도서관 시청각 장애인 점자 강사 양성과정 수업 진행 모습. 시청각 장애인 점자 강사 양성과정은 시청각장애인 당사자를 강사로 육성해 당사자 간 1대 1 교육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혁신적인 시도다.
대한민국에 디지털 도서관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1996년 서울 종로구에 문을 연 LG상남도서관이 올해로 개관 30주년을 맞았다. 상남(上南)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기증한 사저를 기반으로 설립된 이 곳은 지난 30년간 과학과 기술을 통한 사회공헌이라는 철학 아래 정보 소외 계층의 장벽을 허무는 데 앞장서 왔다. 단순한 도서 대출 공간을 넘어 이제는 장애 유형과 생애 주기에 맞춘 한계 없는 배움터로 진화하고 있다.
LG상남도서관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2006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유비쿼터스 도서관 서비스인 ‘책 읽어주는 도서관’이다. 이서비스는 시각장애인이 도서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휴대폰이나 PC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음성 도서를 들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연평균 14만 건 이상의 이용량을 기록하는 이 서비스는 현재까지 약 3만여 권의 오디오북 콘텐츠를 구축했다. 기술의 발전에 발맞춰 이용자 환경(UI/UX)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온 결과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시각장애인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도서관의 역할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장을 돕는 교육의 장으로 확장됐다. 2023년부터 시작된 ‘토요 점보 교실’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점자와 보조공학기기의 앞글자를 딴 이 프로그램은 맹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진학한 시각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일반 학교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 학생들은 특수 교육 환경의 부재로 인해 점자 습득 시기를 놓치거나 교우 관계에서 소외되는 등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LG상남도서관은 국립서울맹학교 내 국립시각장애교육지원센터와 협력해 이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교육 내용은 한글·영어·수학 점자 교육, 스크린리더 및 AI 코딩 등 정보화 교육, 체육 활동(쇼다운) 등이며 서울맹학교 교사 및 분야별 전문 강사,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수업을 이끌고 있다. 연간 18주 과정으로 운영되는 이 교실은 학생들이 학업적 성취를 넘어 일상적인 자립 능력을 갖추도록 돕고 있다.
최근 LG상남도서관은 시각과 청각 기능을 모두 잃은 시청각장애인(데프블라인드)으로 지원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내 약 1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시청각장애인은 현행법상 별도 장애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아 교육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특히 이들은 촉각에 의존해 소통해야 하므로 점자 교육이 필수적이지만 한 명을 교육하기 위해 통역사와 보조 인력 등 6~7명의 인원이 동원돼야 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기 어려웠다. 이에 LG상남도서관은 지난해부터 시청각장애인 점자강사 양성과정을 도입했다. 시청각장애인 당사자를 강사로 육성해 당사자 간 1대 1 교육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혁신적인 시도다. 강사 육성 과정은 2년에 걸쳐 교육계획서 작성부터 교수법, 점자정보단말기 활용법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한다.
LG상남도서관 관계자는 “지난 30년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정보의 문턱을 낮추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누구나 배움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성장의 터전이 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상남도서관은 국내 최초의 디지털 도서관으로 시작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이제는 시청각장애인의 자립까지 고민하고 있다. 기술을 통한 선한 영향력을 실천해 온 이들의 행보는 진정한 지식 복지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갈 한계 없는 배움터의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