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든 당대인들은 자기 시대에 시작된 역사를 알아보기 어렵다. 오늘 시작되었지만 내일이 되어야 알아차리게 되는 일들이 있다. 내 눈에는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그’의 이야기가 그렇다. 만약 미래에 출간된 한국 정치나 민주주의에 관한 글에서 내가 이번 선거를 언급하게 된다면 단 한 사람만 이야기할 것이다. 2026년 선거는 ‘그’가 입후보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고 쓸 것이다.
그는 오늘의 당신이 추측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무려 5선을 해보겠다고 나선 현 시장도 아니고, 대통령이 일 잘한다고 언급한 뒤 곧바로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된 구청장도 아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의 관점에서 중요한 대결을 펼치는 두 사람은 내일의 관점에서는 별 의미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 인물과 그 당이 여태 해오던 것을 몇년 하고 사라질 것이다. 지금 달아오르는 부산이나 대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혈투가 벌어질 것 같지만 미래의 책에 적을 만한 단 한 줄의 새로움도 없는 싸움이다.
최중증 장애인이자 시설생존자
철거민이면서 동시에 해고노동자
자기 언어로 내일의 정치를 하는
그의 등장 자체가 ‘민주주의 시험’
이들에 비하면 그는 입후보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사건이고 민주주의의 시험이다. 그는 최중증의 언어장애 및 뇌병변 장애인 여성이다. 그가 눈짓과 손짓, 고갯짓, 소리로 의사를 표시하면 그를 오래 지켜본 활동지원사가 통역한다.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하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박종필상을 수상했다. 세상은 언어장애인인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는 “영상, 음악, 자막, 내레이션,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들려준다. “저는 카메라로 세상에 질문을 합니다. ‘왜 우리는 보이지 않는가?’”
그는 ‘시설생존자’이기도 하다. “썩은 콩나물국, 군내 나는 김치, 밥을 개밥처럼 비벼 먹었고”, 어느 날에는 목이 말라 “욕실 바닥에 고인 물을 핥아야 했던” 시설에서 15년을 살았다. 가족에 얹힌 제 몸무게를 줄여볼 요량으로 어린 시절부터 최소한의 식사만 했던 사람, 아버지가 “네가 없어야 가족들이 정상으로 살 수 있다”며 시설에 버렸을 때, 가족의 짐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 끔찍한 곳을 15년이나 견딘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장애인들의 “자유와 존엄을 되찾기 위해” 탈시설 활동가가 되었다.
그는 ‘망루에 오른 철거민’이기도 했다. 탈시설 후 어머니가 임차 운영하던 여관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철거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망루에 올라 철거용역들의 위협에 맞서 싸웠다. 그는 ‘해고노동자’이기도 하다. 서울시가 시행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의 노동자였다. 중증장애인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는 사람들에게, 중증장애인은 중증장애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고, 그것도 “사회 구성원 모두를 이롭게 하는 공공의 일”을 한다고 답한 사람이 그이다.
그는 자신의 삶, 특히 시설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과 장애인 권리 옹호 활동을 벌여왔다. 그는 사회를 인권 친화적으로 만드는, 공적 가치를 창출해온 공공노동자이다. 서울시가 사업을 폐기하고 시장이 “고용한 적이 없기에 해고한 적도 없다”며 면전에서 그의 노동자임을 부정했기에, 그는 지금 ‘해고노동자’도 되지 못한 채 복직투쟁을 벌이는 해고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번 선거에 출마했다. 최중증의 언어장애인이고 뇌병변장애인이고 시설생존자이고 철거민이고 해고노동자이고 다큐멘터리 감독인 그가 소위 ‘정치의 무대’에 휠체어를 타고 올라왔다. 그는 이것이 ‘장애가 있어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소비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저는 오히려 이 사회가 누가 말할 자격이 있다고 여겨왔는지, 어떤 말만 공적인 언어로 인정해왔는지를 다시 묻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장애인 야학에서 처음 글을 배웠을 때도 마찬가지 말을 했다. 최중증의 언어장애인이 글을 배운 걸 ‘대단하다’는 칭찬으로만 소비하면 안 된다고, “그보다 먼저, 왜 장애인은 이렇게 늦게까지 배우지 못하게 되었는가, 왜 사회는 장애인의 가능성을 이렇게 오랫동안 함부로 단정해왔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배움은 그에게 “교양이나 취미가 아니라 존재를 되찾는 일, 권리를 되찾는 일”이라고도 했다.
“민주주의란 말 잘하는 사람들끼리 경쟁하는 무대가 아니라, 그동안 말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 등장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이토록 정확한 정의가 있을까. 그의 등장으로 오늘의 민주주의는 내일의 민주주의 앞에 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내일의 정치가, 내일의 민주주의자가 오늘 이미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조상지이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