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작품을 만들 때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담는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 의도를 알아보고 공감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말하는 방식은 단순하지 않다. 주제와 소재, 그리고 이를 담아내는 매체가 적절하게 결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환기의 점묘 추상화를 보자.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우주, 하늘, 바다, 인간에 관한 것일 수 있지만, 표현은 결국 물감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는 유화 물감을 기름에 풀어 액체처럼 녹여서 캔버스 위에 하나씩 점을 찍는다. 점들은 서로 번지다 멈추며 경계를 만들고, 모여서 그림이 된다. 우리는 그가 전하려는 바를 물감이라는 매체를 통해 느끼지만, 해석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내 작업도 그러했다. 사진에 채색을 더한 ‘녹색연구 - 서울 공터, 용산 미군기지’는 2020년에 제작된 연작 가운데 하나다.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에 피어나는 녹색 잎들에 반해 2012년에 시작한 ‘녹색연구’의 후속 작업이다.
부제인 ‘서울 공터’는 서울에 남아 있는 공터를 덮고 있는 식물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나는 그런 곳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 위에 색을 덧입혀 회화와 사진의 경계 어딘가에 위치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송현동, 밤섬, 창신동 등이 주요 대상이었다. 여기 실린 작품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용산 미군기지 대부분을 뒤덮고 있던 녹색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남산에 올라 용산 일대를 내려다보면, 미군기지가 있던 곳만 유난히 나무가 무성해 하나의 ‘녹색의 섬’들을 이루고 있었다. 역사적·정치적 배경 때문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말하려 했던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이 작품을 전시하고 있을 때, 유독 흥미를 보이는 한 분이 있었다. 나는 그가 내 작업의 의도에 공감했기 때문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이 ‘부동산을 다루고 있어서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순간 적잖이 놀랐다. 전혀 상상해본 적 없는 시선이자 해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그 작품을 구매해 갔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일군 사람인지, 단순히 관심이 많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전시를 연 때가 2020년이었는데, 2022년 대통령이 바뀌면서 그림 속 국방부 건물이 대통령실로 바뀌었다. 선견지명이었을까. 인근 부동산 가격이 실제로 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이 작품을 ‘부동산’의 관점에서 바라봤다는 사실은 잊을 수가 없다.
시간이 흘러 그 장소를 둘러싼 풍수지리적 해석과 정치적 상상들이 국가적 논란으로 번져갔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그때의 해석은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이 밖에도 개집 속에 내가 들어가 개처럼 혀를 내민 초기의 사진 합성 작업을 보고, 어느 한 초등학생이 “이 작은 개집에 어떻게 들어갔어요?”라고 묻던 장면이 떠오른다.
작품이 의도한 나 자신에 대한 냉소나 비하는 전혀 관심 밖이었다. 그 소년의 관심은 다 큰 어른이 작은 개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에 있었다. 그것이 합성 사진이라는 사실조차, 오히려 그렇게 믿게 만드는 근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험을 통해 작가의 의도가 반드시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며, 사람 수만큼 해석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