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백경
김은주 지음
동녘 | 600쪽 | 3만3000원
이완용 저택으로 알려진 옥인동 가옥은 법적으로는 신축이지만, 해방 이후 변형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동녘 제공
경복궁 서쪽 인왕산 자락의 ‘서촌’에는 일제강점기 친일파와 식민 권력층이 넓은 토지를 차지하고 유럽식 저택과 별장을 조성했다. 이완용의 집은 조선식 한옥에 개량을 한 안채와 유럽식 2층 양옥의 바깥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그 바깥채로 추정된다. “팔지 말았어야 할 것을 팔고, 누려서는 안 될 것을 누린 자”(1926년 2월13일 동아일보 사설) 이완용이 죽은 뒤에도 그를 둘러싼 논란은 이어졌다. 1997년 그의 증손이 정부 상대 토지 환수 소송에서 승소하며, 역사적 정의의 문제를 다시 환기했다. 현재 서촌의 양옥은 2003년 소유권보존등기가 되어 법적으로는 신축 건물로 분류된다. 일제강점기 당시 사진과 비교하면 건물의 구조와 형태가 거의 일치해 같은 건물로 여겨진다. “식민의 흔적이자 부끄러운 기억의 장소로서 이 건물은 지금 서촌 한가운데에 서 있다.”
<경성백경>은 식민지 역사의 지워진 공간과 시간의 흔적을 복원하려는 시도를 담은 책이다. 건축 아키비스트·역사학자인 저자는 1920년대 경성의 전차 노선을 따라 건축물 100개를 선정했다. 각 건물이 언제, 어떤 배경에서 세워졌으며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를 역사적, 건축적 맥락에서 꼼꼼하게 되짚는다.
공간의 흔적을 따라가는 저자의 시선은 풍경 너머 ‘기억’에 닿아 있다. 일제강점기 네거티브 유산에 대해 ‘남길 것인가, 지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다. 삭제와 미화를 넘어 있는 그대로의 과거를 마주할 것을 주문한다. 식민 지배와 폭력, 근대화의 욕망, 시민들의 일상이 얽힌 흔적을 담담히 풀어내는 기록이다. 정밀한 답사와 고증을 거쳐 500여장의 도판과 함께 복원된 경성의 풍경은 오늘날 서울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