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6년 1월 30일 크렘린궁에서 진행된 방산 기업과의 간담회에서 연설하고 있다./AP연합뉴스
러시아가 오는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전승절) 열병식을 신무기 공개 없이 축소된 형태로 진행할 계획이다.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서 무기 공개가 생략되는 일은 20년 만에 처음이다.
1일 로이터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오는 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리는 전승절 열병식에서 우크라이나의 위협을 이유로 군사 장비를 전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전장에서 밀리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권이 본격적 테러 활동을 시작했다”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전승절 행사는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나치 독일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동시에 군사력을 과시하고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역할을 해 왔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에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행사로도 기능해 왔다. 2024년 전승절 열병식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노획한 무기도 등장한 바 있다. 이 같은 행사를 러시아 정부가 축소 진행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 루슬란 레비예프는 러시아어 독립방송 TV 레인과의 인터뷰에서 “당국은 우크라이나군이 열병식 리허설 기간 무기 파괴를 노리는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다고 WP가 전했다. 레비예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상당한 속도로 방공 시스템을 잃고 있으며, 이는 이미 격화되고 있는 드론(무인기)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모스크바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무인기를 이용해 전선에서 수백㎞ 떨어진 러시아의 석유 생산·수출 기반시설 밀집지역인 흑해 서남부를 집중 공격했다. 석유 수출에 차질을 빚게 해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한 조치였다.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대형 화재가 발생하고, 많은 주민들이 대피했다. 공격의 여파로 대규모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해 환경 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 했다. 이러한 공격은 러시아 경제를 흔드는 것까지는 역부족이지만 러시아 내 여론 악화에는 일조할 수 있다.
러시아 국영 여론조사기관 전러시아여론연구소가 지난 24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7주 연속 하락해 65.6%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며 전쟁 직전과 비슷한 수치다.
민심 이반의 두 축은 인터넷 통제와 경제 악화다. 러시아 경제개발부에 따르면 올해 1~2월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1.8% 줄었다. 1월에는 2.1%, 2월에는 1.5% 각각 감소했다. 2023년 이후 첫 역성장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전역에서는 지난해 봄부터 휴대전화 인터넷 차단이 주기적으로 단행됐다. 당국은 이 역시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이유로 들었지만 메신저 앱인 왓츠앱과 텔레그램, 가상사설망(VPN) 서비스도 잇따라 차단되자 불만이 누적됐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기간이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기간보다 길어진 가운데 지지부진한 종전 협상도 불만을 키웠다고 평가된다.
모나코에 거주하며 인스타그램 팔로워 1360만 명을 보유한 러시아 인기 방송인 빅토리아 보냐는 지난달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영상에서 “나는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지방 관리들의 실정, 인터넷 통제, 중소기업 붕괴 등 많은 진실을 대통령이 알지 못하고 있다”며 “사람들은 지금 벼랑 끝에서 울부짖고 있다”고 말했고, 이는 인터넷 복구 후 3000만 뷰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호응을 얻었다.
이번 전승절 열병식 기간에도 인터넷 차단이 예상된다. WP는 지난해 전승절 열병식 기간에도 인터넷이 차단됐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