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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어린이날 선물은 뭐로 할까

입력 2026.05.03 19:54

수정 2026.05.0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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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라 하기엔 좀 민망하지만 지난해처럼 수녀원 텃밭에 상추와 루꼴라, 바질과 작두콩을 심었다. 밭은 손바닥만 해도 소출은 꽤 된다. 처음에 거름을 좀 주고 나서 물만 제때 주면 알아서 잘들 자란다. 상추나 루꼴라는 수시로 따서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번 따도 금세 다시 자라나 갈 때마다 소쿠리를 하나 가득 채워주는 채소를 보면 사람과 짐승이 처음에는 풀과 나무 열매만 먹고 살았다는 성서의 창조 이야기가 떠오르곤 한다.

동물과 달리 자기를 내주고도 계속 자라나는 식물만 먹었을 때는 지금보다 다툼이 덜했을까? 식물만 먹었다 해도 서로 더 많이 차지하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인간들이 있었을 테니 온전한 평화를 기대할 수는 없었겠지만, 성서가 본디 꿈꾼 세상은 경쟁과 폭력이 없는 평화와 조화의 세계였다.

지난해처럼 바질은 ‘페스토’나 가루로 만들고 작두콩은 차로 만들어 주위 사람들과 나누려고 한다. 내가 기른 걸 주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파는 것보다 향이나 맛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흐뭇해진다. 내가 직접 만든 선물의 효능감이다. ‘내가 직접 만든 선물’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땅이 준 선물이다. 작물 수확 때까지 내가 한 거라곤 씨를 심고 물을 주고 매일 들여다보는 정도다.

씨를 뿌리는 건 사람이고 소출을 내는 건 땅이다. 수확은 땅의 선물이다. 모든 건 결국 자연에서 오는데,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로빈 월 키머러) 자기 것을 상품이 아니라 선물로 내주는 자연의 마음을 헤아리며 살면 우리의 삶과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평화롭지 않을까.

상품은 거래·교환, 선물은 돌봄·순환

지난가을 작두콩을 거두고 몇 알은 파종용으로 따로 떼어놓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콩이 모두 짙은 갈색으로 변했고 말라 쪼그라들었다. 처음엔 내가 씨앗을 잘못 보관했나 생각했는데, 지난해 나한테 작두콩을 얻어간 조카가 거둔 콩도 똑같이 변했다. 할 수 없이 시내 종묘상에 들러 작두콩을 샀는데, 문득 예전에 글로벌 종자 기업 몬샌토가 ‘터미네이터 기술’로 만들었다는 ‘불임 씨앗’이 생각났다. 몬샌토는 유전자 변형 기술로 일회용 씨앗을 만들어 농민들이 매해 씨앗을 사도록 강요했는데, 국제적으로 비난이 거세지자 식용 작물에는 이 기술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불임 씨앗은 자연이 ‘거저 주는 선물’을 ‘이윤을 내는 상품’으로 바꾸려는 자본의 집요한 행태를 보여준다. 생명을 품은 씨앗을 이윤을 내는 상품으로 만드는 세계라도 사람 생명은 존중할까? ‘생명보다 이윤’이고 ‘사람보다 효율’이라는 건 ‘아리셀’이나 ‘대전 안전공업’ 등 사업장에서 어이없이 반복하는 중대재해가 잘 보여준다.

자연은 선물 세계를 만들었고 자본은 상품 세계를 만들었다. 같은 것이라도 상품과 선물은 다르다. 상품은 가격이 있고 선물은 가격이 없다. 선물하려고 상품을 사면 가격표를 뗀다. 선물로 받았어도 가격표를 붙이면 상품이 된다. 상품이 만드는 거래 관계는 상품을 교환하면 끝난다.

선물로 생겨나는 유대 관계는 선물을 교환해도 이어진다. 인위적 결핍에 기반한 상품 세계는 개인, 경쟁, 효율을 강조하고 자연의 풍요에 기반한 선물 세계는 공동체, 협력, 연대를 중시한다. 인간은 상품 세계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로 처신하고 선물 세계에서는 ‘호모 쿠란스’(돌보는 인간)로 살아간다.

선물은 감사와 보답을 낳는다. 받고 나면 나도 뭔가를 주고 싶어진다. 선물은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기쁘다는 것도 깨닫는다. 선물은 축적이 아니라 순환한다. “선물은 비어 있는 곳을 향한다. 원을 그리며 돌다가, 가장 오랫동안 빈손인 사람에게로 향한다.”(루이스 하이드) 함께(com) 선물(munus)을 나누면서 공동체(community)가 형성된다. 선물의 순환으로 이뤄지는 공동체는 소규모지만, 정책으로 지역과 나라도 공동체성을 키울 수 있다. 개인의 삶은 공동체 안에서 풍요롭고 안전하다.

내일은 어린이날이다. 아이들은 선물 세계가 어울릴 텐데 어른들은 상품 세계를 만들어놓았다. 이윤이 중요한 상품 세계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무상의 선물 세계를 맛볼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나무 친구’ 어떨까?

이번 어린이날, ‘나무 친구’를 선물하면 어떨까. 꽃나무면 더 좋겠다. 집 근처 마음에 드는 나무를 하나 골라 이름을 짓고 친구로 삼으라고 하자. 오갈 때마다 인사하고 쓰다듬어주고 잘 지내는지 살펴보라고 하자. 수녀원 뜰에 와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 ‘나무 친구’는 아이들 선물로 꽤 괜찮을 듯하다.

나무! 봄이 오면 가지에 돋아나는 새순으로 생명을 보여주고 꽃과 신록으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여름에는 무성한 잎으로 시원한 그늘을 펼쳐주고 때가 차면 열매를 내고 잎을 떨구며 겨울을 맞는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아이들이 선물의 신비를 맛보고 선물의 이치를 익히길, 생명의 선물을 마음껏 누리고 함께 나누는 삶을 살길 바란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조현철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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