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9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2년 만에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애초 원안은 2020년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되었다. 22대 국회인 작년 3월 새로 법안이 발의되고, 7월에 국회사무처의 검토 의견을 받은 후 9개월 만에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흐름마저 바꾼 비극으로 기억되는 세월호 참사는 재난 안전, 피해자 보호 및 지원,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무, 공적 추모라는 행위의 가치, 나아가 생명이라는 헌법적 가치 등을 일깨운 전환점이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고매한 사상이 아니라 지난 참사들의 고통스러운 집단적 경험과 반복되는 슬픔이 쌓여 새겨진 법안이다.
이 법안에는 독자적 가치가 있다. 우선 이 법은 국민의 안전권을 선언하고 국가 및 지자체의 책무를 명확히 한다는 목적을 담고 있다. 참사 유가족들에게 절실했던 안전사고 피해자의 권리(정보 제공을 받을 권리, 조사에 참여할 권리, 지원을 받을 권리 등)를 선언하고, 안전사고의 발생 원인과 국가 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를 보장하며, 국민생명안전위원회를 통해 생명안전종합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안전사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 설치를 통한 독립적 조사 보장, 기억과 추모 사업 지원, 피해자 정보 누설 금지 등은 국가의 오랜 부재를 메우는 조문들이나 다름없다. 이 모든 것들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라는 피해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이다.
2025년 3월 원안과 이번 수정안을 비교할 때 사회의 기본 이념과 방향을 선언한다는 의미가 있는 기본법으로서 아쉬움은 있다. 우선 수정안은 원안의 ‘모든 사람’을 ‘모든 국민’으로 수정했다. 대신 외국인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두었다. 기본권의 주체로 사람과 국민 사이를 오가던 2018년 개헌 논의가 떠오르는 수정이다. 이태원 참사에서 스러진 외국인들을 생각할 때 단서 조항은 의미 있으나, 이 법의 표제인 ‘생명’을 생각하면 원안이 갖추었던 기본법으로서의 품격은 다소 희석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최근에야 배운 교훈은 참사 피해자가 ‘유가족’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안은 피해자의 범위에 ‘목격자로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람’을 포함시켰는데, 수정안은 피해자를 일단 ‘안전사고로 인해 신체적·정신적·경제적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구체적인 범위를 대통령령에 위임했다. 그런데 굳이 안전사고를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 한정하는 단서를 두었다. 소송 남발 우려가 근거라지만 기본법이라면 불신에 근거한 실무적 우려보다는 미처 인식하지 못한 피해자를 발견해 두껍게 보호하는 길을 열어두는 쪽이 더 어울린다. 설령 피해자의 경계가 의심스러운 소송이 제기되어도 판례를 통해 사회적 인식에 부합하는 선을 그어나갈 수 있다.
수정안은 국가가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자체만 보면 훌륭한 선언이지만, 원안은 ‘반영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원안에는 피해자 정보 누설 및 모욕 행위의 처벌 조항이 있었으나 수정안은 정보 누설의 법정형은 상향하면서 모욕죄는 삭제했다. 피해자의 권리 중 ‘생사가 분명하지 아니한 자의 수색을 요구할 권리’ 및 ‘언론 취재 및 일반인의 접근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사라졌고, 독립조사기구의 조사 관할도 제한되었다. 이 조문들이 보호해줄 수 있었을 장면들이 떠오른다.
법은 통과를 위해 길들여지는 과정을 거친다.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긴 하다. 이 법은 현 수정안만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기본법으로서 반걸음을 마저 내딛지 못한 부분들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 법을 통과시키고자 땀 흘렸을 수많은 이들을 꼽아본다. 지금은 익숙해 보일지 몰라도 12년 전까지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던 피해자의 다양함과 권리들, 국가의 책무, 그리고 생명의 가치가 선언된 것은 소중한 역사적 진보이다. 유가족들께 감사하다.
이 법이 쓸모없어지는 세상을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부끄럽게 여전히 재난이 반복되지만, 이 법에 담긴 눈물과 고통, 치열한 논쟁, 시혜 아닌 권리, 그리고 반성은 현재와 그 세상을 이어줄 것이다. 아직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고, 대통령령 마련, 위원회 구성, 관계 법령 정비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가는 어디 있었냐는 시민들의 질문에 국가가 성실하게 답해야 할 때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