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트리뷴과 뉴욕타임스 같은 주요 신문들의 지면도 은행파산과 뱅크런으로 요동쳤다. 대공황 초기, “경제는 숫자가 아니라 심리”라는 케인스의 지적처럼 언론이 심리를 흔들자 경제는 더욱 흔들렸다. 루스벨트는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자체”라며 동요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뉴딜정책이 계획되고 평정심을 되찾은 언론들은 정부의 시장개입 필요성, 금융개편, 사회복지정책, 공공사업 확대 등 주요 현안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주도하며 정책 공론화에 기여한다. 9·11테러가 발생했다. 언론은 가장 빨랐지만 가장 혼란스러웠다. 테러현장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가운데 불확실한 정보들이 반복적으로 보도됐다. 루머가 양산되고 공포가 확산했다. 진정하자는 호소가 이어졌다. 카오스를 지나 안정을 되찾은 언론들은 사실관계를 검증하고, 혐오와 보복 자제를 촉구하는 등 이성적 대응을 시작했다.
혼란기의 언론보도들은 대체로 동요하다 평정을 찾는 모습이었다. 언론은 이러한 보도행태를 자성했다. 9·11 직후 미국기자협회(Society of Professional Journalists)는 ‘정확성과 책임 있는 보도’ 등 윤리강령을 준수하겠다 다짐했다. 그러나 뒤늦은 성찰이 미래의 답습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유사한 현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2014년 에볼라 확산, 코로나19 팬데믹 보도, 그리고 현재의 연이은 전쟁들에 이르기까지 정도를 달리할 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혼란의 가장 빠른 팔로어는 흔들리는 언론이다. 사실관계 검증과 필요한 의제설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숙의는 당연히 어렵다. 중심 잃은 언론의 의제는 혼란 그 자체이다. 혼란은 결국 언론에서 증폭된다. 언론이 정신을 수습하고 합리적 대응을 시작할 때는 이미 혼란의 소용돌이를 지나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한 이후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는 전쟁과 갈등이라는 혼돈의 시대(age of chaos)에 진입했다”고 한다. ‘중심은 해체되고 무질서하고 분열적인 다극, 혹은 G제로로 이행하는 시대’, 현재의 세계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이다. 세계는 지금 패권 질서, 정보 질서, 기술 질서의 급격한 변동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아무리 길어야 20년 이내인 AGI 시대, 실리콘밸리는 최대 40% 정도의 실업률을 예상한다.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구상에 인간에 대한 비물질적 존중을 찾기 어렵다. 보복관세는 이어지고 동맹은 흔들린다. 수단 등 내전지역의 난민 수는 사상 최다이다. 168명의 어린 소녀들이 폭사했다. 죽음의 전쟁이 탐욕적 내부자 거래에 이용된다는 합리적 의심이 있다. 교황의 권위가 도전받았고 예수의 신성마저 모욕당하는 것은 심각성의 상징이다. 인류는 지금 새로운 문명과 질서를 찾기 전 혼돈의 시간에 진입한 것처럼 보인다.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다음은 쿠바라고 하는 공공연한 예측이 놀랍지 않다. 혼돈은 또다시 어떤 예기치 못할 모습으로 발현될지 모른다. 언론의 보도 패턴을 또다시 반복하기에는 그 양상이 엄중하다. 실수가 수없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구조의 문제이다. 상업언론의 속보 경쟁은 치명적이다. 빠르게 생산되고 반품 없이 소비되는 뉴스 상품의 속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구조는 관성이 되고 준비된 윤리강령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디지털, 나아가 AI 시대의 수많은 유사 언론들과 오염된 정보들은 혼란을 더한다.
스스로 권위 있는 언론이라 평가받고 싶다면 적어도 문명전환기의 혼란 앞에선 상업성을 절제하고 언론의 사회적 책무에 집중해야 한다. 폭풍 같은 혼돈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다. 흔들리지 않는 문명사회의 중심, 공론장의 역할을 다할 때이다.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