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독립매체 이라와디 보도
왕 부장 방문 이후 가택연금 전환
“수지 고문을 외교적 문패 활용”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 2020년 1월 17일 중국 방문 당시 사진. /AFP연합뉴스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중국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지난달 미얀마 방문 기간 가택연금 중인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81)과 만났다고 현지 독립매체 이라와디가 보도했다.
4일 이라와디에 따르면 왕 부장은 미얀마 수도 네피도를 방문했던 지난달 25~26일 중 수지 고문과 비공식적으로 만났다. 이라와디는 왕 부장과 수지 고문의 만남은 네피도의 수지 고문 지정 숙소에서 이뤄졌으며, 미얀마 경찰청장과 외교부, 내무부 관계자들이 동석했다고 소식통 두 명을 인용해 전했다. 현장에서 녹음과 사진 촬영 등은 허용되지 않아 구체적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고도 전했다.
미얀마 정부는 지난달 30일 수지 고문을 가택연금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진영의 거목인 수지 고문은 2021년 1월 쿠데타 이후 군부에 체포돼 부정선거, 부패 등의 혐의로 징역 33년형을 선고받고 5년째 복역 중이었다. 여러 차례 감형으로 형량은 22년형으로 줄었지만 17년이 남아 있다. 미얀마 정부는 수지 고문이 남은 형기를 교도소가 아닌 지정 숙소에서 보내도록 조치한 것이다.
왕 부장의 미얀마 방문 이후 수지 고문의 가택연금 전환 조치가 이뤄져 중국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는 추측을 낳았다. 수지 고문이 외국 고위 당국자를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2023년 7월 시하삭 푸앙껫께우 태국 외교장관과의 만남 이후 약 3년 만이다. 시하삭 푸앙껫께우 장관은 지난달 22일 흘라잉 미얀마 대통령을 만나 수지 고문의 석방을 요구했고 흘라잉 대통령으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왕 부장은 지난달 미얀마 순방에 앞서 태국을 먼저 방문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왕 부장과 민 아웅 흘라잉 대통령의 지난달 25일 면담에서 수지 고문의 석방이 의제가 됐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수지 고문은 중국의 오랜 친구이며, 중국은 항상 그의 상황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아울러 ”우호적 이웃으로서 중국은 미얀마가 자국의 상황에 맞는 발전 경로를 추구하도록 지지하며, 미얀마의 모든 당사자들이 더욱 폭넓고 견고하며 지속적인 평화와 화해를 이루도록 지원한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0년 미얀마를 방문했을 당시 사실상 국가 지도자였던 수지 고문을 만났다. 수지 고문도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국가고문으로 재임하는 동안 중국을 세 차례 방문해 시 주석과 만난 바 있다. 시 주석은 2020년 1월 수지 고문에게 “미얀마의 국내 평화 프로세스와 민족 화해를 위해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며 “앞으로도 건설적인 역할을 계속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도 수지 고문의 석방을 수차례 요구해 왔다. 지난달 30일 가택연금 전환이 발표되자 수지 여사의 실제 건재 여부와 건강 상태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커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얀마 정부는 왕 부장에게 면회를 허가해 수지 고문의 건재를 연출하고 중국을 특별하게 대우한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수지 고문을 외교의 문패로 사용했다”고 평가했다.
미얀마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라와디는 왕 부장의 방문은 중국 자금이 투입된 이라와디강 상류 미잇손 댐 건설 프로젝트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강화시켰다고 전했다. 댐 건설은 대규모 수몰 피해와 강제이주 문제로 주민 반대에 부딪혔으나 미얀마 정부는 전력 부족을 이유로 추진하고 있다. 네피도에는 중국의 지원을 받은 미얀마 국립 질병통제센터 및 의료훈련센터도 문을 열었다.
미얀마와 중국의 국경에는 여전히 중국계 소수민족이 가담한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 소탕 작전이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