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본인이 지난 3일 일본 도쿄 고토구에서 열린 헌법대집회에 참가해 헌법 9조를 상징하는 숫자 9 모양의 풍선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헌법을 살려서 평화로운 세계를” “주권자는 우리들이다” “헌법을 지키자”
지난 3일 일본 도쿄 고토구 도쿄임해광역방재공원에서 열린 개헌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외친 구호들이다. 일본 정치권의 헌법개헌 추진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일본 시민들의 개헌 반대 흐름도 거세지고 있다.
도쿄신문, 아사히신문 등은 일본의 공휴일이자 헌법기념일인 지난 3일 도쿄 고토구 도쿄임해광역방재공원 등에서 열린 ‘헌법을 살려 평화로운 세계를! 2026 헌법대집회’(이하 헌법대집회) 주최 측인 헌법대집회 실행위원회가 집회 참가인원을 약 5만명으로 밝혔다고 4일 보도했다. 일본 전국의 개헌 반대 시위 장소와 참가자 현황을 보여주는 ‘데모캘린더’ 누리집에 따르면 이날 일본 내 220곳에서 열린 집회의 참가자는 7만4404명으로 집계됐다.
일본의 4월말, 5월초 연휴인 골든위크에 포함돼 있는 헌법기념일은 194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을 기념하는 날이다.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집회 등으로 각자 목소리를 높이는 날이기도 하다.
일본 시민들이 지난 3일 일본 도쿄 고토구에서 열린 헌법대집회에 참가해 헌법 9조를 상징하는 숫자 9가 새겨진 부채와 ‘NO WAR(전쟁 반대)’ ‘ STOP 개헌·군확(군비확장)’ ‘RESIGN NOW(당장 사임해) 다카이치 그만둬’ 등의 글자가 새겨진 손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전쟁 반대’, ‘STOP(스톱) 개헌·군확(군비확장)’ 등 손팻말을 들고 “개헌 발의 저지”,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 철회”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을 벌였다. 도쿄신문은 특히 최근의 개헌 반대 집회에는 청년층과 여성의 참여가 증가 중이며, 청년층의 헌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등학생 등의 참여도 늘어나는 추세다.
헌법대집회 실행위에 포함된 시민단체 중 하나인 헌법공동센터의 아키야마 마사오미 공동대표는 “평화헌법의 위기를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는 정치 상황이 존재한다”면서 “과거 개헌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은 시민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보법제 폐지와 입헌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연합의 사사키 히로시 공동대표는 평범한 이들이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다양한 시민들이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전쟁으로 향하는 정부와 기업을 막아서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일본 시민들이 지난 3일 일본 도쿄 고토구에서 열린 헌법대집회에 참가해 ‘NO WAR(전쟁 반대)’ ‘STOP 개헌·군확(군비확장)’ 등의 글자가 새겨진 손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시민들이 응원봉과 손팻말을 들고 개헌 반대 시위에 참가하게 된 것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를 비롯한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평화헌법이 개정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해 10월 취임 직후부터 개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왔으며, 지난달 집권 자민당 당대회에서는 내년 개헌안 발의를 목표로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3일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헌법 개정안 4개 항목 가운데 선거구 합구 해소와 긴급사태 조항 신설을 시급한 과제로 꼽으며 단계적 개헌 추진의 뜻을 밝혔다.
이 신문은 또 다카이치 총리가 헌법 9조 개정과 관련해 자위대 명기에 대해서도 의욕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일본 헌법 9조는 전쟁과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 육해공군 전력 보유 및 교전권을 부인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3일 개헌 지지세력도 헌법기념일을 맞아 집회를 열고, 정치권에 개헌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아사히와 마이니치 등에 따르면 개헌을 지지하는 ‘아름다운 일본 헌법을 만드는 국민 모임’이 도쿄도 치요다구에서 개최한 ‘공개헌법포럼’에는 약 850명이 모였다. 주최 측에 따르면 온라인까지 합한 참가자는 약 1만350만명가량이다. 이 집회에는 야당인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와 자민당, 일본유신회 국회의원 등도 참석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여론이 더 높은 상태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3~4월 전국 유권자 20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편 여론조사에서‘헌법 개정 찬성’ 응답은 57%로 ‘개정 반대’(40%)보다 높게 나타났다. 아사히신문이 18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개헌 ‘찬성’이 47%로 ‘반대’(43%)보다 많았다.
다만 헌법 9조 개정에 대해서는 다수 일본인들이 여전히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미우리 조사에서는 전쟁 포기 내용을 담은 9조 1항을 ‘개정할 필요 없다’는 응답이 80%로 높게 나타났다. 아사히 조사에서도 헌법 9조에 대해선 ‘변경하지 않는 편이 좋다’가 63%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