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리고 장례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최소 10만년에서 최대 35만년 지속된 것이라 한다. 선사시대부터 현생 인류가 장례를 치렀다고 추정할 증거가 있다. 죽은 사람을 특별히 대해온 역사가 곧 인류 사회의 역사와 일치하는 셈이다. 선사시대를 연구하는 브뤼노 모레유의 <최초의 장례>는 장례처럼 “죽음을 사회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인류 사회를 이루는 기본 요소 중 하나”라고 말한다. 죽은 자의 몸에 특정한 처리를 가하는 관습은 그 사회의 구조와 문화적 전통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을 지탱하는 모종의 가치를 공유하는 효과가 있다.
중석기시대에 나타난 최초의 공동묘지가 좋은 예였다. 테비엑 유적, 외딕 유적 등은 주검을 바로 땅에 묻는 일차장 무덤이 모인 중석기시대 유적이다. 여러 시신을 한데 매장하는 다인장(多人葬)이나 군장(群葬)과는 다르게, 죽은 사람을 개별적으로 매장하되 무덤이 놓일 장소를 공유한 곳이다. 모레유에 따르면 이러한 공동의 묘지는 “어느 집단이 시신의 매장을 통해 해당 장소를 ‘생물학적으로 점유’했음을” 뜻한다. 한 집단이 계속 같은 장소에 조상을 묻으면 그곳은 집단의 연속성이나 구성원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상징적인 가치를 갖게 된다. 사람을 떠나보내는 장소가 그 집단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어떤 지역에 터전을 잡고 살아간다는 말에 이보다 더 어울릴 수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거주지가 바뀔 때 죽은 자를 함께 옮기는 모습도 이상하게 보이진 않는다. 멜라니 킹의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는 ‘이장 신청서’를 소개한다. 가족이 이사하며 죽은 이를 같이 데려가려 할 때, 영국 국교회라면 무덤이 있는 교구에 이장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나아가 링컨 같은 유명인은 죽은 후에 아주 긴 여정을 겪었다. 워싱턴에서 암살된 후 그의 시신은 미국에서 “약 2700㎞를 돌며 국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는 일리노이에 있는 묘지에 안장되었으나 그곳에서도 도굴을 피해 적어도 17회 이상 이장을 겪었다고 한다. 우리는 죽은 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표현하지만, 죽은 이의 무덤은 세상을 떠나지 않고 우리 사이에 남는다.
사실 얼마 전 가까운 친족의 장례식을 치렀다. 기성품 상복을 입고 장례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한국식 장례 절차를 수행했다. 영정 옆의 촛불은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꺼지면 안 된다든가, 헌화의 방향에 정답은 없으니 영정을 향해 꽃을 놓아도 되고 문상객을 향해 놓아도 된다는 등의 안내를 들었다. 물통에서 꺼낸 국화는 30분만 지나도 시들해지기 시작하므로 헌화된 꽃을 주기적으로 물통에 돌려놓아야 한다는 실용적인 조언도 있었다. 그리고 장례의 마지막 날, 발인하러 가기 전에 국화를 꺾어 그 꽃송이로 촛불을 껐다.
나는 영정과 위패를 들고 상여 앞에 섰다. 그날의 매장은 관을 들고 화장터를 거쳐 유골함을 무덤에 안치하는 이차장이었다. 무덤의 옆면을 여니 지난번 장례를 치르고 모셨던 유골함이 보였다. 두 분 다 안녕히 계시라고 속으로 인사를 올렸다. 장례에 관한 풍습이나 믿음은 제각각이라도 장례 의식의 근저에 놓인 메시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죽은 후에도 사회에서 버려지지 않을 것이며, 우리 모두 그렇게 앞서 죽은 자들의 뿌리 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심완선 SF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