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아르메니아에서 열린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 환영식에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일방적 휴전 선언에 맞서 러시아보다 이틀 앞선 선제적 휴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승절 열병식을 위한 러시아발 일정에 끌려가지 않고 먼저 주도권을 쥐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엑스에 올린 성명에서 “러시아 SNS를 통해 나오는 적대 행위 중단(휴전) 방식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에 공식적으로 전달된 요청은 없다”면서 “우리는 어떤 ‘기념행사’보다 인간의 생명이 훨씬더 소중하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5월 5일 밤에서 6일로 넘어가는 0시부터 휴전 체제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평화는 열병식과 기념행사를 기다릴 수 없다”며 “모스크바가 진정으로 전투를 끝낼 의지가 있다면 내일 밤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러시아를 비판했다. 다만 휴전 종료 기간은 명시하지 않았다. 시비하 장관은 이번 제안이 “전쟁을 끝내고 외교로 전환하기 위한 진지한 제안”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러시아 국방부는 제2차 세계대전 승리기념일(전승절)을 맞아 오는 8~9일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휴전을 시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이어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전승절 열병식을 우크라이나가 방해할 경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향해 대규모 미사일 공격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러시아가 전승절을 명분으로 제시한 휴전 일정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선 긋기로 읽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아르메니아에서 열린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 연설에서도 러시아를 겨냥한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러시아가 전승절 열병식을 군사 장비 없이 축소해 개최하기로 한 점을 거론하며 “그들은 군사 장비를 마련할 여력이 없고, 무인기(드론)가 붉은광장 상공을 맴돌까 두려워한다”며 “이는 그들이 지금 강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제재를 통해 러시아에 계속 압박을 가해야 한다”며 “제재 완화에 대한 어떤 의견에도 반대해달라”고 유럽 국가들에 호소했다.
이처럼 양측이 휴전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전선에서는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군의 탄도미사일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인근 메레파에서 민간인 7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 자포리자주에서도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드론은 모스크바 고급 주거지역의 고층 건물에 충돌했고, 러시아 벨고로드주에서도 드론 공격으로 민간인 1명이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