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한복판에서도 쉽게 일어나기 어려운 우연한 만남이었다.
하루 업무를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지하 상점가를 지나 개찰구로 가려는 순간, “하나, 둘, 셋. 이기자!”라는 한국말이 울려 퍼졌다. 일제강점기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정신영 할머니를 모시고 미쓰비시중공업에 항의 방문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한국 활동가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은 지난달 8일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한 긴급행동’에도 참가했다고 했다. 일행 중에는 이 행동을 기획한 지바 하나코씨도 있었다.
지바씨는 이번 시위가 과거와는 매우 달랐다고 말했다. 주최 측 추산 약 3만명이 참가했다. 평일 국회 앞 시위로서는 이례적인 규모였다. 참가자 구성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일본의 시위는 대체로 장년층이 중심이지만, 이날은 20~30대 젊은층이 눈에 띄었다고 했다. 지바씨의 느낌은 실제 조사 결과와도 맞아떨어졌다. 교도통신 조사에 따르면 참가자의 약 50%가 30대와 20대였고, 여성은 전체의 60%를 넘었다. 지바씨는 사진도 보여주었다. ‘나의 생명을 사랑하는 일반 시민의 모임’ ‘무기를 꽃으로 뒤덮어버리는 모임’ ‘왕자님의 청춘은 내가 책임지는 연합’ 등 기발한 문구들의 깃발 사진이었다. 나는 윤석열 탄핵 시위 현장을 지키던 ‘키세스’ 시위대와 남태령에서 밤샘 연대를 이어간 젊은이와 여성을 떠올렸고, 탄핵 집회에 등장했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기발한 깃발을 떠올렸다.
한국의 시위 문화가 일본으로 옮겨온 것일까? 지바씨는 그렇다고 말했다. K팝과 한국 문화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한국의 정치와 역사에도 관심을 두게 됐고, 축제 같은 탄핵 시위를 보며 자연스럽게 배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졌고, 응원봉 불빛이 광장을 채웠다. 지바씨는 한국의 시위 문화가 일본의 젊은이들이 거부감 없이 시위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시위 문화가 일본 시민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국이 큰 빚을 지고 있는 이와의 만남도 있었다. 후세 유진 기자다. 시부야에서 만난 그가 보여준 것은 우키시마호 희생자 유해 사진 17장이었다. 우키시마호 참사는 1945년 8월24일 조선인 수천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하던 배가 폭발과 함께 침몰한 사건이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 524명과 일본인 승무원 2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소극적이었다.
후세 기자는 정보공개 청구를 거듭해 출항 전후 작성된 명부의 존재를 확인했고, 이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관련 자료 75건을 한국 외교부에 전달했다. 이번에는 희생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진 자료까지 찾아냈다. 그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후세 기자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한·일 시민들이 연대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한·일관계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한·일 시민사회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대의 폭을 더욱 넓혀가고 있는 것 아닐까.
박진환 일본 방송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