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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입력 2026.05.05 20:04

수정 2026.05.0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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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옵니다. 녹색 잎들이 세상의 속기(俗氣)를 지웁니다. 정갈해서 더 눈부신 푸름 속에 그날이 얹혀 있습니다. 새싹이 움트는 날부터 음력 4월 초파일까지는 어떤 풀도 독성이 없다고 합니다. 햇살도, 바람도, 비도 순합니다. 산하가 이처럼 맑고 고운데도 인간의 탐욕이 일으킨 전쟁을 보고 듣습니다. 지구인들은 이분법이 소용돌이치는 블랙홀로 빨려들고 있습니다. 세상이 불타는 집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화택에 갇혀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비극의 실상을 제대로 통찰하는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석가모니께서도 자신이 왕자로 있었던 카필라국이 무너지는 비극을 겪습니다. 이웃 코살라국의 왕은 석가족에 깊은 원한이 있었습니다. 그 원한을 삭이지 못하고 석가모니의 만류에도 쳐들어와 석가족을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석가모니는 그저 탄식만 했을 뿐입니다. “업보란 하늘로 옮길 수 없다.” 하지만 철저하게 복수를 끝낸 코살라 왕은 피비린내를 씻어내지도 못하고 최후를 맞습니다. 강가에서 연회를 즐기다 급류에 휘말려 죽습니다. 인간의 복수극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석가모니께서 요즘 계셨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막지 못할 겁니다. 대신 <법구경>에 나온 대로 이렇게 설파했을 겁니다. “원한은 원한으로 풀리지 않는다. 원한을 버려야 풀어진다.”

석가모니께서 오시기 전에도 진리를 깨달은 사람, 즉 부처는 숱하게 존재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석가모니를 특별하게 받들어 모십니다. 진리를 깨달아 모든 사람이 본래 부처임을 처음으로 알렸기 때문입니다. 그 진리의 골수는 바로 중도(中道)입니다. 중도는 극단을 버리는 것입니다. 선과 악, 있음과 없음, 사랑과 미움, 너와 나 등 양변을 떠나 그 중간에 머물고, 다시 그 중간마저 떨쳐버리는 것입니다. 속인의 짐작으로는 귀납법의 허점을 메우기 위해 생겨난 ‘통섭’과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혹 깨달음의 경지를 모독한 것은 아닐는지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도 결국은 마음속의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을 닦아내야 중도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실존에 대한 진실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행복이란 꽃을 피웠어도 꽃잎에는 괴로움의 이슬이 맺혀있습니다. 즐거운 날들이 펼쳐졌어도 과거 속에는 고통의 순간들이 묻어있습니다. 괴로움은 만인의 것, 그것들은 실존을 통찰해봐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도의 진리를 얻으면 비로소 중생이 보입니다. 그것은 고통의 공유입니다. 유마거사는 <유마경>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프다. 왜냐면 모든 중생이 아프기 때문이다.” 대덕들도 불공은 절 밖으로 나가 남을 돕는 것이라고 일렀습니다. “죽어가는 강아지에게 식은 밥 한 덩이를 주는 것이 부처님 앞에 만반진수를 차려놓고 수천만번 절하는 것보다 공이 크다.”

재물 보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힘이 되어주는, 고통과 두려움을 나눠 갖는 ‘무외시(無畏施)’도 있습니다. 향기로운 얘기 하나 들어보십시오. 부처님 제자 마하가섭이 빌어먹으러 오두막에서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어느 담장 밑에서 나병(한센병) 환자가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가섭은 밥을 나눠달라며 병자 옆에 멈춰 섰습니다. 병자는 망설이다가 피고름 흐르는 손으로 밥 한 덩이를 발우(밥그릇)에 담았습니다. 그때 그의 썩은 손가락 하나도 발우에 떨어졌습니다. 가섭은 그의 곁에 앉아 조용히 한 덩이 밥을 먹었습니다. 그것은 나병자의 아픔, 슬픔, 서글픔을 삼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말도 없었습니다. 병자는 눈물을 쏟았습니다. 나병자는 병과 죽음의 두려움을 떨쳐버렸습니다.

지구촌 곳곳에 공포와 불신과 증오가 촘촘히 박혀있는 폭력의 시대입니다. 내 안에는 본래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살고 있습니다. 나라 안에서도 이념, 지역 등으로 나뉘어 혐오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편싸움 같고, 멀리서 보면 내전 같습니다. 양극단에서 상대를 공격하며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그 너머의 통찰은 하지 않습니다. 지혜로서 세상을 보시는 부처님은 이리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눈을 들어 저 푸른 대지를 보십시오, 어떤 분별도 하지 않고 어떤 차별도 없이 생명을 품습니다. 대지를 향해 두 손 모아 다시 성철 스님의 법어를 떠올립니다. “부처님은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이미 구원되어 있음을 알리려 오신 것입니다.”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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