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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닉스’는 생각보다 더 무섭다

입력 2026.05.05 20:07

수정 2026.05.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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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다루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억대 성과급이 얼마인지, 두 회사 보너스가 몇배 차이 나는지, 파업 가능성과 이직 러시가 어떤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기사 대부분이 “누가 얼마 받았나”를 세는 사이, 이 두 수출거대기업이 한국 경제와 사회에 만들어내는 구조적 변화는 충분히 조명되지 않는다. 기업 간·기업 내 격차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그나마 일부 다뤄지고 있다. 정작 잘 다뤄지지 않는 것은, 수출거대기업 체제가 한국 시장경제의 조정 방식, 정치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삼전·하이닉스는 한국 사회 수출거대기업 체제의 상징이다. 두 회사의 반도체 매출 대부분이 해외 데이터센터·빅테크·클라우드·스마트폰 업체에서 나온다. 그래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오면 수출·투자·세수가 동시에 좋아지지만, 사이클이 꺾이면 같은 경로를 따라 모두 식는다. 충격의 원인은 한국 내부가 아니라 미국·중국·유럽의 인공지능(AI) 서버 투자, 글로벌 금리, 지정학 리스크다. 한국 경제는 점점 “우리가 어찌해볼 수 없는” 외부 사이클에 더 크게 좌우되는 구조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전통적 통화정책도 수출거대기업의 반응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국내 금리를 내려도 두 회사가 글로벌 수요만 보고 투자를 정하면 경제성장률은 크게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금리를 올려도 막대한 내부유보와 해외 조달능력이 있는 두 회사는 투자 계획을 유지하고, 대신 중소·내수 기업만 자금난을 겪을 위험이 있다.

반도체 감세 역시 삼전·하이닉스가 이미 짜둔 투자 범위를 바꾸지 못하면, 기대만큼 성장률도 늘리지 못한 채 재정 여력만 깎일 수 있다. 따라서 정부 역할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국내에 미치는 충격을 완충하는 것”이어야 한다. 호황에 반도체 세수 재원을 충분히 확보해 늦지 않게 정부가 꼭 해야 하는 일에 돈을 쓰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이 반도체 경기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일 잘하는 정부의 모습이다.

여기서 중요한 인식 전환이 있다. 삼전·하이닉스의 거버넌스 리스크는 더 이상 “회사 고유 위험”이 아니라 한국 전체가 떠안는 “시장 위험”이다. 두 기업의 의사결정이 개별 종목의 주가를 넘어, 코스피·환율·연금·세수·성장률까지 함께 흔드는 것이다. 두 기업의 자본적 지출이 투자·수출 등 경제성장률을 움직이고, 내부통제 실패는 주가 급락으로 이어져 국민연금, 가계자산까지 동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또, 지금 우리는 두 기업의 성과급 결정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영향력을 목도하고 있다. 즉, 개별 기업의 의사결정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웬만한 정부 정책 못지않은 구조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규제기관·언론·시민사회 등은 이들을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회사”로 보고 시장안정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반면, 삼전·하이닉스 경영진은 “잘난 놈 건드리지 마라”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

정치에서도 두 수출거대기업의 무게는 매우 무겁다. 노동·복지·기후·지역균형발전 같은 의제가 공존해야 하지만, 실제 정치 일정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언제나 “반도체 경쟁력”이다. 여야는 세액공제·규제완화·전력지원을 경쟁적으로 약속하고, 총선·대선 때마다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지원 조건이 지역 공약의 핵심 소재가 된다. 두 수출거대기업은 단순한 경제주체를 넘어, 정책과 선거의 어젠다를 사실상 함께 설계하는 정치 행위자가 된 셈이다. 이런 정치적 영향력은 언론 광고, 포럼 후원, 연구용역, 각종 협의체 참여, 대관 활동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행사된다. 기업의 직접 정치자금 기부는 금지돼 있지만, 경제력 집중이 클수록 수출거대기업이 입법·규제 과정에 투입하는 돈·인력·시간은 다른 이해당사자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결과 법과 제도가 수출거대기업의 부담은 줄이고, 나머지 경제주체의 부담은 늘릴 위험이 있다. 이때 규제기관·언론 등이 중심을 잡지 못하면, 수출거대기업의 힘은 지속 가능한 성장과는 거리가 먼, 경기변동과 K자 성장을 키우는 증폭기로 바뀐다. 세계 반도체 전쟁 담론에 휩쓸려 세제·규제가 과도하게 풀리고, 나중에 정신이 들면 “K자 회복과 성장”을 비판하지만, 그때쯤이면 제도는 이미 친수출거대기업 방향으로 굳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삼전·하이닉스를 선악의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 두 수출거대기업의 영향력이 우리가 생각해온 “수출 잘하는 국가대표 대기업”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수출거대기업의 강하고 다층적인 힘은 이제 투명한 규칙과 견제 장치 안으로 들어와야만 한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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