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 가족 행사에 ‘화기애애’
홀로 한국 온 이들 “가족 보고 싶어”
E-9 비자 등 ‘가족 동반 입국 불허’
전문가 “이들도 사람, 제도 개선을”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 시내 주요 광장과 백화점, 놀이공원 등에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이들로 북적였다. ‘가정의달’인 5월이 되면 유독 외롭고 힘든 이들이 있다. 머나먼 고국에 가족들을 두고 홀로 타향살이를 하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지난 4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가족 동행 축제’에 대기 줄이 늘어섰다. 나들이에 들뜬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까르르 웃었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쇼핑몰과 식품관, 영화관도 오전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가족 단위 손님이었다. 유아동 의류 매장에는 여자아이 2명이 엄마와 함께 옷을 고르고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3대가 쇼핑을 나온 한 가족은 딸이 신을 장화를 둘러보고 있었다. 식당에서 할머니는 어린 손주들에게 고기를 잘게 잘라줬고, 엄마는 뜨거운 국물을 식혀가며 아이들에게 밥을 떠먹였다. 6층 영화관에서 만난 남자아이는 팝콘을 품에 안은 채 영화 예고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가정의달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겐 남의 일일 뿐이다. 본국에 가족을 두고 홀로 한국에 와 일하는 이들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5월이 되면 외로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커진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의 한 식품 관련 업체에서 일하는 네팔 출신 40대 A씨는 “거리에서 한국인 가족들이 아이랑 같이 쇼핑하고 밥 먹고 놀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마음이 아프다”며 “가족들이 멀리 있고 서로 만날 수 없어 슬프다”고 말했다. 8년 전 아들과 아내, 부모를 고향에 두고 한국에 왔다는 A씨는 마지막으로 가족들을 만난 지 2년이 흘렀다고 했다. 그는 매일 영상통화를 하며 화면으로만 17세 아들의 얼굴을 보고 있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일이 끝나고 가족들과 나누는 영상통화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고 한다. A씨는 “가족과 공원에 가고 사진도 찍고 영화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북 전주시 한 농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을 잃은 네팔 출신 30대 이주노동자 B씨는 산재 보상 소송 때문에 가족 곁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B씨는 “어제 아들이 영상통화 중 ‘아빠 빨리 돌아와요. 보고 싶어요’라고 했다”며 “가족들과 얼른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 두 살, 열 살 아들을 본국에 두고 온 필리핀 이주노동자 C씨는 “나도 한국 사람들처럼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라며 “아들에게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가족을 두고 홀로 한국에 온다. 국내 외국인 취업비자 중 가장 비중이 큰 고용허가제(E-9) 등은 원칙적으로 가족 동반 입국을 불허한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E-9 비자로 들어오면 보통 5~10년 정도 한국에서 일하며 혼자 산다”며 “향수병과 우울증에 많이 걸리고, 오래 떨어져 살면서 가정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주노동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며 “가족들과 동반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취업비자로 한국에 왔다가 기간만료 등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된 이들은 고향을 다녀오기도 어렵다. 출국하면 다시 한국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송은정 이주민센터친구 센터장은 “미등록 체류를 하면 쭉 가족들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며 “가장 큰 어려움을 물어보면 대부분 가족을 못 만나는 거라고 얘기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