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가 5일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대사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는 한국 HMM 소속 화물선이 지난 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폭발·화재 사고가 난 것을 두고 “트럼프의 모험주의적 정책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5일 밝혔다. 한국 화물선 폭발사고에 대한 책임있는 이란 당국자의 언급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쿠제치 대사는 주한 이란대사관에서 경향신문과 진행한 단독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호르무즈 해협 상황이 자기 마음대로 쉽게 풀릴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회사나 선사들이 트럼프의 이야기나 약속을 따라가서는 안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나도 뉴스를 접해 자세한 상황은 모른다”면서도 “이란 군과 사전에 합의가 되어 있었다면 다른 선박들처럼 안전하게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에는 현재 한국 선박 26척과 선원 약 170명이 40일 넘게 묶여 있다.
이란을 명분없이 침공하고 호르무즈 해협이 미국 통제하에 있다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때문에 이같은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의 선박이 공격당했다. 그들은 선박의 대열에 없었고 혼자 행동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국 화물선이 단독 행동하다가 공격당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5일(현지시간) 발언과 대비된다.
그는 “ 이란이 침략받았을 때부터 우리는 호르무즈 해협이 이 지역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라고 분명히 밝혔다”며 “어떤 선박이든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려면 무조건 이란과 사전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은 선박이 입는 피해는 모두 그 선박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쿠제치 대사는 “이란은 두 개의 섬 사이에 새로운 안전 통행로를 마련해 두었으며, 이란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에도 이 통로로는 이란 선박이든 외국 선박이든 통과해 왔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 선박의 통과를 위해서는 “한국 고위 관리들과 이란 고위 관리들 사이의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전제 조건을 달았다.
한국 정부의 군사적 옵션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에 대비해 지지 표명, 정보 교류, 인력 파견, 군 자산 투입의 1∼4단계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 쿠제치 대사는 “이 지역에 어떤 군사 무기든 자산이든 보내는 행위는 이란이 비호의적이고 반 이란적인 조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통행료 징수의 정당성을 두고는 “지금은 전쟁 상황이다. 그런 문제를 따져 묻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며 “불법적 침략으로 이란에서 3500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인프라가 공격받고 민간인이 희생되는 상황은 정당성이 있느냐. 이란이 침략받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압박을 가하는 것”이라고 반문했다.
잇따른 군사적 충돌 속에 휴전 유지 가능성을 두고는 “솔직히 말하면 희망적이지 않다”며 “트럼프의 악의적인 이란 역봉쇄 조치 자체가 불법적이며, 오히려 휴전을 무시하거나 사실상 해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답했다. 쿠제치 대사는 “지금처럼 긴장되고 안 좋은 상황은 모두 미국이 일으킨 중동 지역 문제 때문”이라며 “이 모든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강조했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가 5일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대사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