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 정효진 기자
현직 부장판사가 고교 동문 변호사로부터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고 판결 관련 청탁을 들어준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6일 김모 부장판사와 정모 변호사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과 형법상 뇌물공여 등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2023~2025년 전주지법 항소심 재판장으로 재직하면서 정 변호사가 수임한 21건의 사건 중 17건을 피고인 측에 유리하게 감경하고, 그 대가로 3300여만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김 부장판사가 감경한 사건을 보면, 그는 1심에서 음주운전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김 부장판사는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 운영에 가담해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공수처는 김 부장판사가 감형을 대가로 2023년 5월부터 2025년 4월까지 배우자가 쓸 바이올린 교습소를 무상으로 정 변호사에게서 제공받아 1466만6000원의 이득을 취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또 교습 목적 방음 공사 비용 1569만원을 정 변호사에게 대납하게 했고, 2024년 9월4일 현금 300만원이 담긴 견과류 선물 상자를 받았다고 봤다.
공수처는 정 변호사가 김 부장판사가 내릴 판결 내용을 미리 확인해 막대한 이득을 봤다고 판단했다. 석방 시 수억원을 지급한다는 조건을 판결 선고 전날 피고인과의 계약 내용에 추가해 성공보수를 챙기는 식이다. 보석허가가 나기도 전에 직전 피고인에게 석방을 조건으로 한 수천만원 규모 성공보수를 미리 받은 뒤 피고인이 실제로 석방된 사례도 있었다.
공수처는 또 김 부장판사와 정 변호사의 친분이 지역 교도소 내에 널리 알려지면서 정 변호사 법무법인에 의뢰인이 몰린 사실도 파악했다. 김 부장판사가 심리하는 사건은 정 변호사를 선임하면 감형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대화가 수용자들의 접견 녹취에 담겨 있었다고 한다.
김 부장판사는 보안 메신저인 ‘시그널’을 사용하면서 민감한 대화가 오갈 땐 정 변호사에게 “시그널로 옮겨서 얘기하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선고 전후로 김 부장판사가 아내와 식사한 비용을 정 변호사가 대신 지불한 내역도 확인했다고 한다.
공수처는 지난 3월 김 부장판사와 정 변호사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주된 공여 부분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공수처는 구속영장을 추가로 청구하지 않고 추가 보완 수사를 거쳐 이날 두 사람을 불구속 기소했다.
김 부장판사 측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공수처가 영장 심사 과정에서 법원으로부터 소명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받고도 추가 조사도 없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기소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공수처가 주장하는 재판거래는 결단코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재판 과정에 성실히 임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