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관계자 “특별한 입장 없다”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이었던 고 김치엽씨의 아버지 김영구씨가 6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고인에 대한 산업재해 신청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연구원으로 일하다 입사 1년 만에 목숨을 끊은 고 김치엽씨 유족이 6일 정부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개발에 부진을 겪던 상황에서 과도한 성과 압박에 따른 스트레스로 고인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유족 측은 주장했다.
김씨 유족은 6일 근로복지공단 화성지사에 고인에 대한 산업재해를 인정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대학원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하고 2024년 4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화성사업장에 입사했다. 고인은 당시 삼성전자 경영진이 이례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실적 부진을 겪던 HBM 개발 업무에 관여하다가 지난해 3월 사망했다.
김씨가 사측으로부터 HBM 개발 성과 압박을 받다가 사망해 산재에 해당한다고 유족 측은 주장했다. 유족과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등 시민단체는 이날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정황과 기록 등을 공개했다.
유족 측에 따르면 고인의 업무 메모에는 ‘회사 폐급’ ‘나는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빨리 빨리 빨리’ 등이 기록돼있었다.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유족 측은 밝혔다. ‘회사 짤림’ ‘대기발령’ ‘해고’ 등 고용 불안을 짐작케하는 표현도 있었다.
고인의 SNS와 진료 기록 등에는 ‘잘해보려는데 일그러진다’ ‘파트장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등의 내용이 남아있었다. 고인은 지난해 2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소견을 받고 치료를 권유받았다. 그해 3월에는 회사 인사팀 권유로 사내 마음건강클리닉에서 진료를 받았다.
고인은 지난해 3월 팀 프로젝트 발표 이후 SNS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글을 남기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은 고인이 사망하고 1년여 동안 산재를 입증하기 위해 고인의 인터넷 검색 기록 등 관련 자료를 수집해왔다.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이었던 고 김치엽씨의 아버지 김영구씨가 6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아들의 죽음에 대한 산업재해 신청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고인의 사진을 들고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아버지 김영구씨는 “아들이 SNS에 남긴 글은 단순 감정 표현이 아니라 한계에 도달한 사람이 보내는 구조 신호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들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삼성전자의 성과 압박이 만든 구조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유족 측 대리인인 이성민 노무사는 기자회견에서 “입사 후 고인의 진료 기록을 보면 불과 수개월 사이 항우울제 용량이 반복적으로 늘어났고, 불안과 수면장애 증상으로 약물이 추가됐다”고 밝혔다. 그는 “산재 판단에서 중요한 것은 업무 과정에서 겪은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의 존재 여부”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유족의 산재 신청과 관련해 “특별한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담일지 등 관련 자료는 유족에게 성심성의껏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