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케이브는 호주 출신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30장이 넘는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호주와 영국 차트에 수많은 곡을 올려놨다. 그중 대표곡을 하나만 꼽자면 동향 가수 카일리 미노그와 함께 발표한 ‘Where the Wild Roses Grow’다. 이 곡은 영국과 호주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만약 닉 케이브가 아직 낯설다면 ‘Into My Arms’부터 들어보길 추천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장면에 흐르던 바로 그 곡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닉 케이브의 노래는 따로 있다. 2019년 발표한 ‘Bright Horses’다. 사실 이 곡을 발표하기 전, 닉 케이브는 감당하기 힘든 비극을 겪었다. 막내아들 아서가 15세의 나이에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서가 세상을 떠난 지 불과 3년 뒤인 2022년 둘째 아들마저 예기치 못한 사고로 떠나보내야 했다.
‘Bright Horses’를 처음 들었을 때 울컥하는 마음을 참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사랑하는 이들의 잇따른 죽음 앞에 무너져내려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닉 케이브는 이 곡을 통해, 슬픔이야말로 삶의 피할 수 없는 조건임을 영적인 톤으로 노래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레너드 코언의 ‘Anthem’을 들으며 큰 위로를 얻었다고 한다. 그 노래의 핵심 가사는 이렇다. “모든 것에는 금이 가 있죠. 그리고, 빛은 그 틈 사이로 스며들어요.”
닉 케이브는 이렇게 고백한다. “고통에 강박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금’에만 주목하고, 그 틈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외면하는 건 오류임을 깨달았어요. 고통의 순간에도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고통을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떠난 이를 배신하는 것도, 슬픔을 외면하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는 모두 금이 가 있지만, 동시에 빛이 관통하는 아름다운 존재니까요.” 이렇게 슬픔 속에서도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은 죄가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승리의 행위가 될 수 있다.
최근 닉 케이브의 고백을 떠올리게 하는 앨범을 만났다. 악동뮤지션(악뮤)의 신보 <소문의 낙원>이다. 수록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에서 이찬혁은 동생 이수현이 느낀 깊은 슬픔을 어루만진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쫓아내지 말고 품어주어라/ 아주 예쁜 돌이 된단다.” 만약 이 노래를 듣고 감동했다면 작가 조지 맥도널드의 이 문장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아름다움과 슬픔은 언제나 붙어 있는 것.”
살다 보면 슬픔은 필연적으로 들이친다. 한데 이 슬픔을 충분히 견디고 치유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서는 인간은 결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슬픔을 토로하라. 그러지 않으면 슬픔에 겨운 가슴은 미어져 찢어지고 말 테니.” 셰익스피어가 <맥베스>에 쓴 것처럼 슬픔을 내뱉어야만 우리는 그것의 흔적을 하나둘 지울 수 있다. 악뮤가 노래하는 것처럼 아름다움은 그 과정에서 비로소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정서적 건강을 위해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부정적인 감정을 무조건 차단하고 억누르기만 하면, 언젠가 더 깊은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그것을 해소하고 날려버릴 수 있는 통로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리고 때로 음악은 그 통로가 되어준다. 삶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내면의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한다. 닉 케이브와 악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끝에는 결국 빛이 비치고 있을 것이다.
배순탁 음악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