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소재인 판타지 작품은 인간의 ‘후회’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작품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등장인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후 네가 갖고 싶은 게 정말 돈과 명예인지 좀 더 소중한 것은 없는지 묻는 시험의 반복이다. 답이 정해져 있는 이 문제들은 주인공이 물질적 욕망을 추구할수록 또 다른 비극을 발생시켜 끝내 주인공에게 인간적인 가치를 선택하게 만드는데, 그 까닭을 짐작하자면 이 작품들이 전제하는 ‘시간’이란 한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과 그 세상이 모여 만든 질서와 원칙을 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어로 ‘카이로스’는 ‘상대적인 시간’이자 ‘기회’란 뜻으로 물리적이며 연속적인 시간을 나타내는 ‘크로노스’와 구분된다. 6년 전 방영된 드라마 <카이로스>는 제목처럼 시간을 되돌려 다시 기회를 얻고 싶은 한 남자의 이야기다. 딸을 유괴로 잃은 남자 김서진(신성록)은 절망에 빠진 채 범인을 쫓다 자신의 휴대폰이 한 달 전의 과거를 살고 있는 한애리(이세영)의 휴대폰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매사에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판단을 중시하던 서진은 그렇게 매일 밤 10시33분, 하나의 번호로 연결된 애리와의 전화 통화에 남아있는 삶의 희망을 모두 건다.
그러나 공조가 계속되면서 두 사람은 이것이 단순한 납치와 실종 사건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사건의 배후에는 건설사의 불량 시공으로 인한 건물의 붕괴 사고가 있었는데, 서진은 그 사고의 생존자이면서, 그 사고에 책임이 있는 ‘유중건설’의 임원이었던 것이다. <카이로스>는 여기서부터 서진을 통해 시청자에게 질문한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시간을 되돌렸다. 그러나 알게 된 것은 나의 현재를 위협할 참담한 진실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되돌린 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작품은 이 물음에 답하는 대신, 서진의 딜레마에 우리 사회가 겪었던 참사들을 겹치며, 진실을 외면한 결과가 어떠한 슬픔과 고통이 되어 돌아오는지를 격렬하게 비춘다.
<카이로스>가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을 그렸다면, 최근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허수아비>는 진실이 도착한 이후의 시간을 묻는다. 작품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창작되었지만, 정작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이춘재의 범행이나 그를 검거하는 과정이 아닌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또 다른 피해자들이다. 1988년과 2019년을 오가는 작품을 보며 떠오르는 건 강압적 수사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이 되어 20년간 수감생활을 했던 윤성여씨다. 2019년 이춘재의 모든 범행이 밝혀지면서 재심을 통해 사건 발생 30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그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역설하는 존재이자, 진실을 왜곡하고 억압하는 일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고독을 남기는지 증명하는 존재다.
서진은 모든 순간 자신에게 떳떳한 선택만을 하는 애리의 태도에서 용기를 얻어 과거의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한다. 설령 그것이 자신을 곤경에 빠트릴지라도 그는 그 용기로 인해 변화할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윤성여씨 역시 30년의 긴 세월 동안 자신이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결백을 믿어준 박종덕 교도관과 나호건 수녀 덕분이라고 말한다. 서진에게 애리가 그랬듯, 두 사람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둠 속에 파묻힌 진실을 견인하며 윤성여씨의 ‘카이로스’를 만든 등불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이 질문 앞에 멈춰 생각한다. 코인이나 주식을 사는 것이 정답이라 말하는 세상이지만, 간혹 어떤 이들은 시간을 되돌려 고통스러운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거나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하려 한다. 어떤 방해에도 자신의 진실에 닿고자 하는 그런 사람들의 세상은 무한하다. 그들은 이미 과거와 현재를 쉼 없이 오가며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이고, 그들의 용기가 비로소 모두의 미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고통스럽고, 더디며, 모든 것을 온전히 되돌려주지 못한다. 그러나 그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 그리고 그 진실을 믿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한 고통은 고통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동력을 얻어 모두의 ‘카이로스’가 된다.
복길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