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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모 쓴 야인’의 자화자찬…조선 유일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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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관리들이 쓰는 오사모를 쓰고, 일상에서 입는 옥빛 도포를 걸친 한 노인이 바닥에 꼿꼿하게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강렬한 인상의 초상화는 바로 18세기 영·정조대를 대표하는 문인화가 표암 강세황이 직접 그리고 화면 위에 찬문까지 써넣은 자화상이다.

표암 강세황은 시·서·화에 모두 뛰어나 '삼절'로 칭송받은 문인화가였다.

당대 최고의 화원인 김홍도의 어릴 적 그림 스승으로 평생 그와 교유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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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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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모 쓴 야인’의 자화자찬…조선 유일 자화상

입력 2026.05.06 21:35

수정 2026.05.0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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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익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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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강세황 자화상

강세황(姜世晃·1713~1791), <자화상(自畵像)>, 1782년, 비단에 먹과 색, 보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강세황(姜世晃·1713~1791), <자화상(自畵像)>, 1782년, 비단에 먹과 색, 보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시·서·화 뛰어난 김홍도의 그림 스승
오랜 야인 시절 후 60대 이후에 관직
야복 위에 오사모, 두 가지 길 ‘압축’
“마음은 산림에” 내면을 녹인 찬문도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에서는 5월을 맞아 새로운 서화 명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단원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의 교과서 속 명화부터 다채로운 민화에 이르기까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작품들이 전시장에 가득하다. 그 가운데 은은한 조명 아래 홀로 빛을 내는 한 점의 초상화가 시선을 붙든다. 관리들이 쓰는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일상에서 입는 옥빛 평상복을 걸친 한 노인이 바닥에 꼿꼿하게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강렬한 인상의 초상화는 바로 18세기 영·정조대를 대표하는 문인화가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1713~1791)이 직접 그리고 화면 위에 찬문(贊文)까지 써넣은 자화상(自畫像)이다.

표암 강세황은 시(詩)·서(書)·화(畫)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칭송받은 문인화가였다. 당대 최고의 화원(畵員)인 김홍도의 어릴 적 그림 스승으로 평생 그와 교유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안산과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당대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갔고 뛰어난 감식안과 비평 활동을 바탕으로 18세기 화단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미술사학자 이동주는 그를 당대 “예원(藝苑)의 총수”로 평가했다.

강세황이 젊은 시절부터 관료로서 출세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조부와 부친이 모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형이 1728년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면서 벼슬길에 대한 뜻을 접고 처가가 있던 안산으로 이주해 약 30년 동안 재야의 문인으로 살았다. 서화가로서의 명성은 바로 이 야인 시절에 형성된 것이었다. 그의 본격적인 출사는 60세가 넘어서야 이루어졌다. 1773년 첫째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자 영조의 부름을 받아 관직 생활을 시작했고, 정조 등극 이후에는 한성부 판윤에까지 오르며 조부와 부친에 이어 3대가 기로소에 들어가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이 자화상은 강세황이 뒤늦게 관직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1782년, 70세에 종2품 관직에 있을 때 그린 것이다. 눈가와 얼굴 윤곽에는 음영이 강하게 표현되어 입체감이 두드러지고, 주름과 점, 피부의 작은 흔적들까지 세밀하게 그려졌다. 옷의 주름 역시 명암이 뚜렷하며, 단정한 윤곽선은 화면 전체에 기품 있고 안정된 분위기를 부여한다. 문인화가의 작품임에도 전문 초상화가의 기량에 견줄 만큼 완성도가 높다.

이 자화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일상의 야복에 관모를 쓴 복식의 부조화이다.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복식은 주인공의 신분과 직위를 드러내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주인공의 사대부 초상화는 대체로 관직에 있는 사람의 위계를 드러내는 관복 초상과 공무에서 물러나 있거나 관직에 오르지 않은 문인의 야복 초상으로 엄격하게 나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강세황은 관리의 오사모를 쓰고 있으면서도 몸에는 관복이 아닌 야복을 걸쳤다. 관료와 야인이라는 서로 다른 정체성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독특한 선택의 의도는 화면 상단에 그가 직접 쓴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수염과 눈썹이 하얗구나. 오사모를 쓰고 야복을 걸쳤으니, 마음은 산림에 있으면서 조정에 이름이 올랐음을 알겠다. 가슴에는 만권의 책을 간직하였고, 필력은 오악을 흔드니, 세상 사람이 어찌 알리. 나 혼자 즐기노라. 노인의 나이는 일흔이요, 호는 노죽(露竹)이라. 초상을 스스로 그리고, 화찬(畵讚)도 손수 쓰네. 때는 임인년(1782)이다.”

이 자찬에서 알 수 있듯, 강세황은 오랜 세월을 보낸 ‘산림’의 삶을 잊지 않으면서도 조정의 인정을 받은 관료로서의 자신을 함께 남기고자 했다. 관모를 쓴 야인의 모습은 출(出)과 처(處), 곧 벼슬길과 처사의 길을 모두 지나온 그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이는 두 길 모두를 당당하게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 강세황의 내밀한 자기 인식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주로 공적인 기념과 의례를 위해 제작되었기 때문에, 화가가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자화상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온전한 형식으로 전하는 조선시대 자화상은 강세황의 작품이 유일한 것으로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자신의 외형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대한 인식을 찬문으로 써넣은 이 작품은 연구자들의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며 우리 초상화의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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