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기 싫은 나무늘보 메부
가야노 신야 글·그림 |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40쪽 | 1만5000원
나무늘보가 아무리 느리다지만, 그림책의 주인공 ‘메부’는 조금 심한 편이다. 하도 움직이지 않아 온몸에는 초록색 이끼가 자라났고, 새가 떨어뜨린 씨앗이 머리에서 싹을 틔웠다. 나무에 매달리는 것조차 귀찮은 메부는 숲 바닥에 누워 꼼짝 않는다. 메부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메부에게 작은 나방이 찾아온다. 이끼가 포근하게 자라난 메부의 몸이 마음에 든 나방은 메부의 몸 위에 알을 낳고 둥지를 꾸린다. 메부의 몸 위에서 작은 알들을 소중히 돌보는 나방의 모습은 무기력하기만 한 메부의 마음속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킨다.
게으름을 타박하고 성실·근면을 강조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한 존재의 의욕과 노력을 꺾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책이다. 메부가 처음부터 무기력했던 것은 아니다. 메부도 나무 위에서 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메부의 속도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아기 원숭이를 위해 열매를 따주려 하지만, 메부의 움직임이 너무 느린 탓에 원숭이는 다른 것을 먹는다. 길 잃은 새에게 둥지를 알려주려 하지만, 메부의 말이 입에서 나올 틈도 없이 다른 새가 말을 채 간다. 애써 한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가자, 메부는 점점 자신감을 잃고 무기력해져 갔다.
하지만 자신의 몸 위에 둥지를 꾸린 나방의 모습을 보며 메부는 자신만의 속도로 마음을 연다. 비가 몰아쳐 나방과 알들이 위험에 처하자 메부는 귀찮음과 무기력을 떨쳐내고 느릿느릿, 그러나 힘차게 나무를 오르기 시작한다. “나방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메부를 일으켜 세웠다.
일본의 신예 작가 가야노 신야가 메부의 속도처럼 느리게, 그러나 정성 들여 수만개의 점을 찍어 완성한 그림이 글과 어우러진다. 효율만 강조하는 초고속 사회, 무한경쟁 사회에서 지치고 도태된 이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