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예술이라는 이름의 약 처방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예술이라는 이름의 약 처방

입력 2026.05.07 20:12

수정 2026.05.07 20:24

펼치기/접기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예술이라는 이름의 약 처방

어디선가 잘못된 레코드가 돌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분명 바늘을 새로 바꾸고 턴테이블의 수평을 맞췄는데도, 음악은 결정적인 순간에 튀어버린다. 그리고 일상의 리듬이 갑자기 견딜 수 없는 소음이 되어 내 심장을 조금씩 조이는 것 같다. 그 소음을 멈추기 위해 약을 먹거나, 누군가 내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주길 바라며 소파에 눕는다. 하지만 그 원인을 찾아 치료하지 못한다면, 병은 낫지 않고 약은 계속 먹어야 한다.

한국의 마음 치료라는 시스템은 어딘가 기묘한 구석이 있다. 정신과 대기실에는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의사와 마주 앉는 시간은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시간보다 짧다. 반대로 상담소의 문을 두드리면 공감과 경청이라는 이름의 긴 터널이 시작된다. 물론 다정한 위로는 소중하지만, 몇년째 터널 속을 걷다 보면 내가 길을 찾고 있는 것인지, 그저 어둠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인지 모호해진다.

공황장애도 대물림이나 유전적인 문제가 있을까? 아니면 같은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회사 잘 다니고 있었고 얼마 전에는 결혼도 한 나의 조카가 공황장애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한참을 헤매다가 마음 치료를 하러 병원에 갔을 때 난 마음이 매우 착잡했다.

내 경우 자가운전이든 대중교통이든 출퇴근이 지옥일 정도로 극도의 터널증후군과 폐쇄 공포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의사는 약 처방을 했지만 난 약 대신 퇴사를 선택했고 내 스스로에게 시골에서의 삶과 예술 처방을 선물했다. 그 영향 때문이었을까? 조카에게도 나의 예술 처방이 전이된 것인지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신기했어요. 진료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예요. 대단히 독창적이거나 예술적인 그림은 아니었어요. 남자와 여자가 어딘가 멀리 산이 있는 벌판을 걷는 뒷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는데, 둘 다 덩치가 좋은데 여자는 어딘가 아픈지 혹은 불편한지 남자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채 걷고 있고 남자는 그 어깨를 감싸안고 걷는 그림이었어요.”

난 흥미로워서 조카가 말한 그 그림을 당장 찾아봤다. 역시 대단한 그림은 아니었지만 왜 눈물이 났는지는 알 것 같았다.

“한창 힘들 때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응원조차 저버리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호전되지도 않는 간극 때문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내가 사라져야 힘든 상황이 끝날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요. 그 그림을 보고 절대적으로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가 바로 내 옆에 있다는 걸 갑자기 깨닫게 된 것 같아요.”

바로 그 조카에게 보여주고 싶은 5월의 전시를 발견했다. 하인선 작가의 ‘심심’전이다.

뭐랄까? ‘야망 없는 그림’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할까? 사람들은 보통 대단한 성취나 야망이 담긴 것을 보며 힘을 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 뇌를 진짜 치유하는 건 이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무심한 풍경일 때가 많다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그림 속 두 사람의 엉거주춤 산행을 봐야 한다. 밤길인지 서로에게 의지하며 엉거주춤 만화처럼 걸으면서도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급박함도, 완벽하게 잘 그려져야 한다는 강박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그림이다.

말해주고 싶다. 마음의 병을 앓는 모두에게. 너무 빨리 나으려고 애쓰지도 말자. 그냥 슬렁슬렁 가도 된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조금 심심하게, 조금 느리게,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