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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넥의 멋, ‘파임의 깊이’ 견디는 구조에 있다

입력 2026.05.09 18:00

  • 박민지 패션 디자이너

(21) 브이넥 니트

[박민지 디자이너의 옷 잘 입는 공식]브이넥의 멋, ‘파임의 깊이’ 견디는 구조에 있다

목선의 작은 여백, 옷차림 전체에 세련미 더해
5월의 공기에 맞는 소재 ‘코튼·실크 혼방’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깊이 찾아야

아침에 옷장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옷은 대개 거창한 옷이 아니다. 너무 차려입은 듯 보이지 않으면서도, 무심하게 입은 듯 보이지 않게 해주는 옷. 셔츠처럼 단정하지만 셔츠보다 부드럽고, 티셔츠처럼 편하지만 티셔츠보다 조금 더 정리되어 보이는 옷. 정확히 말하면 깊게 파인 브이넥 니트다.

브이넥 니트는 아주 익숙한 아이템이다. 한때는 셔츠 위에 입는 단정한 니트로, 또 한때는 교복 같은 프레피 스타일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 다시 눈에 들어오는 브이넥 니트는 조금 다르다. 목선을 살짝 여는 정도가 아니라, 옷 전체에 숨통을 틔워주는 방식에 가깝다. 목을 감싸는 니트가 겨울의 옷이라면, 목선을 여는 니트는 봄의 옷이다. 아직 반소매 하나만 입기에는 이르고, 두꺼운 재킷은 무겁게 느껴지는 5월 초다. 이 애매한 계절에 깊은 브이넥 니트는 꽤 현실적인 선택이 된다.

좋은 브이넥 니트는 생각보다 찾기 어렵다. 막상 입어보면 차이가 크다. 너무 얇으면 몸에 힘없이 붙고, 너무 두꺼우면 계절과 맞지 않는다. 목선이 너무 좁으면 답답하고, 너무 넓으면 어깨선이 무너진다. 깊이 파인 브이넥이라도 네크라인의 립 조직이 탄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몇 번 입지 않아도 목둘레가 늘어나고, 옷 전체가 지친 인상을 준다. 깊은 브이넥의 멋은 과감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깊이를 버티는 구조에 있다.

요즘 많은 브랜드에서 비슷한 브이넥 니트를 내놓는다. 가격이 높은 브랜드의 제품은 물론이고,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브랜드에서도 꽤 그럴듯한 디자인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겉모습만 보고 고르면 실패하기 쉽다는 점이다. 매장에서 처음 보았을 때 매끈하고 예뻐 보여도, 몇 번 입고 난 뒤 금세 보풀이 일고 낡아 보이는 니트가 있다. 특히 아크릴이나 폴리에스터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니트는 처음에는 가볍고 반듯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표면이 지저분하게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천연 섬유도 보풀이 생긴다. 캐시미어도, 울도, 코튼도 입고 움직이면 마찰이 생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낡는 방식은 다르다. 어떤 옷은 세월이 흐르며 부드러워지고, 어떤 옷은 금세 피곤해 보인다.

그래서 니트를 고를 때는 브랜드 이름보다 혼용률을 먼저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비싸다고 늘 좋은 것은 아니고, 저렴하다고 모두 나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섬유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그 섬유가 이 계절과 이 디자인에 어울리는지다. 5월에 입을 브이넥 니트라면 겨울용 울이나 두꺼운 캐시미어보다 조금 더 가볍고 차가운 촉감이 좋다. 코튼과 실크 혼방은 그런 점에서 이상적이다. 코튼의 담백함에 실크의 은은한 윤기가 더해지면 니트가 지나치게 포근해 보이지 않고 산뜻해진다. 손에 닿았을 때 살짝 매끄럽고, 몸에 닿았을 때 답답하지 않은 니트. 이런 소재는 5월의 공기와 잘 맞는다.

실크 100% 니트도 물론 아름답다. 하지만 좋은 실크 니트는 가격이 높고, 광택이 강하면 일상복으로 소화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실크가 조금 섞인 혼방이 오히려 현실적일 때가 많다. 코튼 100% 니트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지만, 짜임과 두께를 잘 봐야 한다. 코튼 니트는 잘못 고르면 너무 무광이라 텁텁해 보인다. 봄 니트라기보다 낡은 스웨트셔츠처럼 보일 수 있다. 이때 코튼에 캐시미어가 아주 조금 섞였거나, 실크나 비스코스가 함께 들어가면 표면감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비스코스가 들어간 니트도 눈여겨볼 만하다. 비스코스는 차갑고 유연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봄과 초여름 사이에 입기 좋다. 다만 너무 많이 들어가면 옷이 축 처질 수 있다. 매장에서 옷걸이에 걸린 모습은 근사해 보여도, 막상 입으면 어깨와 밑단이 힘없이 내려앉는 경우가 있다. 브이넥 니트는 특히 목선이 중요하기 때문에 소재가 너무 흐르면 전체가 무너진다. 깊은 브이넥일수록 몸판은 부드럽되, 네크라인은 단단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좋은 니트다.

니트의 짜임도 중요하다. 봄 니트라고 해서 무조건 성글게 짜인 것을 고를 필요는 없다. 성긴 니트는 사진으로 보면 근사하다. 하지만 실제로 입기에는 난도가 높다. 어떤 이너를 입을지, 속살이 얼마나 보일지, 바지나 스커트와 어떤 균형을 만들지 모두 계산해야 한다. 레이어드에 자신이 있고, 분명한 스타일링 의도가 있다면 성긴 브이넥 니트는 멋진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쉽게 손이 가는 옷을 찾는다면 너무 성글거나 지나치게 늘어지는 니트는 조심하는 편이 좋다. 좋은 봄 니트는 얇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가볍지만 초라하지 않아야 한다.

브이넥의 깊이는 결국 자기 감각의 문제다. 배꼽 가까이 내려오는 깊은 브이넥을 셔츠나 슬립 드레스, 탱크톱 위에 겹쳐 입을 수도 있다. 아주 과감하고 현대적인 방식이다. 최근 몇 시즌 동안 런웨이에서도 깊게 파인 브이넥 니트가 자주 보였고, 그 옷들은 브이넥을 단정한 니트가 아니라 레이어드의 도구로 사용했다. 목선에서 가슴선, 허리선까지 길게 내려오는 브이 라인은 옷 안쪽에 무엇을 입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셔츠를 받치면 날카롭고, 실크 슬립을 겹치면 유연하며, 얇은 티셔츠를 입으면 훨씬 일상적이다.

반대로 레이어드가 번거롭게 느껴진다면 하나만 입어도 되는 깊이를 고르면 된다. 모든 브이넥이 과감할 필요는 없다. 쇄골이 살짝 보이는 정도의 브이넥도 충분히 아름답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깊이다. 옷은 결국 몸 위에 놓이는 것이고, 몸의 선은 사람마다 다르다. 목이 길어보이고 싶은지, 쇄골선을 드러내고 싶은지, 목걸이와 함께 연출하고 싶은지, 혹은 이너 티셔츠의 색을 살리고 싶은지에 따라 선택은 달라진다. 깊은 브이넥을 입는다는 것은 많이 드러낸다는 뜻이 아니라, 어디까지 열어둘지를 스스로 정한다는 뜻에 가깝다.

겨울처럼 몸을 꽁꽁 닫아두지 않아도 되고, 여름처럼 모든 것을 가볍게 덜어내지 않아도 되는 시기. 그 사이에서 깊은 브이넥 니트는 목선에 작은 여백을 만든다. 그리고 그 여백이 옷차림 전체를 조금 더 느슨하고, 조금 더 세련되게 만든다.

▶박민지

[박민지 디자이너의 옷 잘 입는 공식]브이넥의 멋, ‘파임의 깊이’ 견디는 구조에 있다

파리에서 공부하고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20여년간 일했다. 패션 작가와 유튜버 ‘르쁠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세 번째 저서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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